서대(犀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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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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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서대 |
한글표제 | 서대 |
한자표제 | 犀帶 |
상위어 | 대(帶) |
하위어 | 금서대(金犀帶), 오서대(烏犀帶), 홍서대(紅犀帶) |
관련어 | 혁대(革帶)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대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대한제국 |
왕대 | 태조~순종 |
집필자 | 이민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서대(犀帶)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0년 4월 1일, 『성종실록』 12년 12월 22일, 『성종실록』 13년 11월 24일, 『성종실록』 19년 2월 8일, 『성종실록』 25년 3월 1일, 『세종실록』 24년 9월 25일 |
1품의 관복(冠服)에 두르던 띠.
내용
서대(犀帶)는 1품의 벼슬아치가 관복을 입고 허리에 두르는 띠였으나, 그 제도가 문란해지자 1438년(세종 20) 큰 고을 향리들의 서대 착용을 금지하였다(『세종실록』 20년 4월 1일). 1481년(성종 12)에는 중국 황제가 성절사(聖節使)한치형(韓致亨)에게 서대를 하사하였는데, 서대를 받고 돌아왔으니 일행의 영광이라고 위로한 것으로 보아 서대는 존귀함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성종실록』 12년 12월 22일). 그런데 1482년(성종 13)에는 경연을 파하고 이파(李坡)에게 서대를 하사한 것을 비롯하여(『성종실록』 13년 11월 24일) 1488년(성종 19) 좌참찬(左參贊)신승선(愼承善)에게도 하사하여(『성종실록』 19년 2월 8일) 서대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1494년(성종 25)에는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 윤민(尹愍)과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이균(李均) 등이 서대 하사를 철회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성종실록』 25년 3월 1일).
용례
議政府據禮曹呈啓 鄕吏等犀帶瑪瑙纓玉環子玉纓珊瑚纓 竝皆禁斷(『세종실록』 24년 9월 25일).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