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혜(草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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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을 엮어 만든 신목이 없는 신.

내용

초혜(草鞋)는 일명 초리(草履) 또는 짚신이라고 하는데 짚 이외에 삼, 칡, 닥나무 껍질로 만들기도 한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남녀 모두 신었으나 조선시대에는 고급의 초혜는 문무백관 이하 양반이 신었고 일반 서민은 짚신을 신었다. 1540년(중종 35) 6월에는 외간의 창기(娼妓)들이 금선(金線)을 두른 초혜를 신고 다닐 정도로 혼인·의복 등의 사치가 심해 이에 대한 상소가 있기도 하였다(『중종실록』 35년 6월 1일).

한편 국상(國喪) 중에 전직 대소품관(大小品官)은 모두 다 백의(白衣)·백립(白笠)·백대(白帶)를 띠고 백화(白靴)나 초혜를 신었다. 이러한 제도는 모두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따른 것이다. 1757년(영조 33) 6월의 기록에 관구(菅屨)와 소구(疏屨)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데, 참최(斬衰)에는 초혜를 착용하고 재최(齊衰)에는 졸오들이 신는 것과 같은 마구(麻屨)를 신는다고 하였다(『영조실록』 33년 6월 27일).

용례

金線草鞋若屨 宮中不著 而外間娼妓之類 爭相效之 此必由廢朝之風也(『중종실록』 35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