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전(荒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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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된 토지.

개설

농업경영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개간 상태나 경작 상태에 따라 다양한 용어로 불렀다. 개간된 토지는 간전(墾田), 현재 농사를 짓는 토지는 기전(起田)·기경전(起耕田)·시기전(時起田) 등으로 불리었고, 반대로 현재 농사를 짓지 않은 토지는 진전(陳田)·진황전(陳荒田) 등으로 불리었다. 황전은 진전이나 진황전과 비슷한 토지로 오랜 기간 경작되지 않은 밭을 일컫는 용어였다. 국가에서는 세수의 증대를 위하여 황전의 개간을 적극 권장하였는데, 황전을 개간한 자에게는 그 소유권을 부여하고 아울러 몇 년간 면세의 혜택을 주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오늘날의 농지는 대부분 같은 토지에서 매해 농사를 짓지만, 전통시대의 경우 그러한 안정적 농업경영이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우선은 농법상 농작물을 길러 낼 수 있는 지력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두 해 농사를 짓고 난 이후 땅을 놀리는 휴한법(休閑法)이 행해지기도 하였고, 혹은 전쟁이나 변란 등으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 농작(農作)이 불가능해지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국가의 가혹한 부세 수탈 등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경작하던 토지를 버리고 떠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였다.

한 번 경작되었던 토지에서 계속적으로 농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황폐화되는 현상이 많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토지가 다시 농업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동력이 투입되어 개간하는 작업이 필요하였고, 개간한다고 해도 토지의 생산성이 매우 낮았다.

그러나 황전의 증가는 곧 재정 수입의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황전에 대한 개간 장려책을 적극 시행하였다. 세종대 공법(貢法) 도입 당시에는 일단 정전(正田)에 포함된 토지에 대해서는 매해 수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세종실록』 26년 11월 13일). 이것은 정전의 토지가 진황전이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또 함경도 등 북방 지역의 황전을 개간한 자에게는 면세 해택을 주기도 하였다. 이는 북방 지역을 개척하기 위한 정책이었다(『세종실록』 10년 2월 13일). 이러한 개간 우대 정책은 『경국대전』에도 반영되었다. 3년 이상의 진황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신고하여 경작할 수 있게끔 규정하였다.

변천

조선후기에도 황전은 계속적으로 발생하였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황전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였다. 이때 발생한 황전을 개간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각 궁방이나 아문이 이를 절수하여 궁방전과 둔전으로 삼을 수 있게끔 해 주었다. 이러한 궁방전과 둔전은 이후 조선후기 내내 재정적 현안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농업경영상 황전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러한 황전에 불법적인 수세가 이루어져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또 황전은 양안에 등재되지 않아 조세 부과 대상이 되지 않았는데, 일부에서는 황전을 개간하여 경작하면서도 보고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경작되는 토지를 은결(隱結)이라 하였다. 이 때문에 중앙에서는 재정 확충 방안을 논의할 때마다, 양전을 시행하여 은결을 국가 수세 대상으로 확보하자는 안이 반복해서 제기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이철성, 『17·18세기 전정운영론과 전세제도 연구』, 선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