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通度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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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이 당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보사찰로,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영취산에 있는 절.

개설

통도사(通度寺)는 646년(신라 선덕여왕 15) 자장(慈藏)이 당(唐)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舍利)와 가사(袈裟), 대장경 등을 금강계단(金剛戒壇)에 봉안하고 창건하였다. 불사리, 부처의 가사 등이 보관되어 있어서 3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佛寶寺刹)로 꼽힌다. 자장이 계단을 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받아 득도시킴으로써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도량이 되었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고 한다.

고려 선종 때 크게 확장하였고, 공민왕 때도 많은 건물을 세웠다. 조선 태종 때 조계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고, 임진왜란 때 절이 전소된 후 선조, 인조 때 중건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영조, 순조, 헌종, 고종대에 걸쳐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자장이 부처의 사리와 가사 등을 봉안하여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알려져 있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통도사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646년 자장이 당(唐)에서 신라에 돌아와 문수보살에게 사리를 모실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묻자, 어느 날 저녁 꿈에 동자(童子)가 나타나 동국(東國)에 부처님으로 모시라고 일러주었다. 자장은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알았지만 신라의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 보냈더니 얼마 후 오리는 한 송이 칡꽃을 물고 돌아왔다. 자장은 칡꽃이 피어 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뜻임을 알고 한겨울에 칡꽃을 며칠 동안 찾아 나서던 중 양산에서 좀 떨어진 영축취산에 이르러 칡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절을 세운 것이 통도사였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것은 인도 영취산(靈鷲山)의 모습과 통하고,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하고, 또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度)한다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계단은 승려에게 계를 수여하는 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이 금강계단에 있다고 한다. 또 통도사는 불사리, 부처의 가사 등이 보관되어 있어서 3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佛寶寺刹)이기도 하다.

창건 당시에는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몇 개의 법당이 존재한 작은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선종 때 크게 확장하여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石鐘形) 부도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3층석탑 및 배례석(拜禮石), 봉발탑(奉鉢塔),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 등을 건립하였다.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1340년(고려 충혜왕 복위 1)부터 1369년(고려 공민왕 18) 사이에 기존의 법당 외에 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2) 조선전기

1407년(태종 7) 12월, 양주(梁州: 현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가 조계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양주 통도사는 조계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자복사찰은 나라의 안녕과 고을의 복을 빌기 위해 지정한 사찰로, 조선초에도 통도사가 양주 지역을 대표하는 명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조선후기

임진왜란 때 절이 전소되었다. 1603년(선조 36) 사명당(四溟堂)이 중건하였고, 1641년(인조 19) 우운(友雲)이 다시 중건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1705년에는 성능(性能)이 중수하였으며, 이후에도 영조, 순조, 헌종, 고종대에 걸쳐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4) 근현대

대한제국 정부에서 전국 16개 수사찰(首寺刹)을 정할 당시 경상남도의 수사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가람 배치는 동서축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건물이 배열되어 있다. 소속 암자로는 선원(禪院)인 극락암을 비롯하여 백운암·비로암 등 13개의 암자가 있다. 부설 기관으로 성보박물관을 비롯하여 자비원, 자비도량, 영농법인, 통도사유치원, 통도사어린이집 등이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본사이다.

문화재

통도사 대웅전 금강계단(通度寺 大雄殿 金剛戒壇, 국보 제290호)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이다. 자장에 의해 지어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5년(인조 23)에 우운(友雲)이 중건하였다. 건물 내부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데 그것은 대웅전 뒤의 금강계단에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기 때문이다.

통도사 동종(通度寺 銅鐘, 보물 제11-6호)은 1686년(숙종 2)에 제작된 종으로 크기는 높이 1.59m, 무게 1,200㎏이다. 승려 사인(思印)이 만든 조선시대 범종으로 몸통에 8괘(八卦) 문양이 새겨져 있다.

통도사 봉발탑(通度寺 奉鉢塔, 보물 제471호)은 석존의 의발(衣鉢)을 받들어 둔 곳이라 하여 의발탑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2.6m로 부처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도사 국장생석표(通度寺 國長生石標, 보물 제74호)는 통도사 토지 경계의 경내를 표시하는 석표로 통도사의 동남쪽 약 4㎞ 지점에 세워져 있다. 높이는 1.62m, 너비는 0.57m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다.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운 장생표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인 1085년(고려 선종 2)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도사 은입사동제향로(通度寺 銀入絲銅製香爐, 보물 제334호)은 고려시대 13세기에 만든 향로로 높이 33.0㎝이고, 통도사 청동은입사향완(通度寺 靑銅銀入絲香垸, 보물 제1735호)은 고려시대에 만든 향로로 높이 21.0㎝이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가람고(伽藍考)』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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