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전(舍利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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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殿閣).

개설

사리전(舍利殿) 또는 사리각(舍利閣)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는 법당을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사리전을 더 격상시켜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한다. 통도사 적멸보궁을 비롯한 5대 적멸보궁이 대표적인데, 모두 신라 때 승려인 자장이 진신사리를 가져와 봉안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가 창건한 흥천사에 사리전이 있었고, 고려말의 회암사에도 사리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위치 및 용도

(1) 5대 적멸보궁

사리전 혹은 사리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말하는데, 부처의 분신과 다름없는 사리를 모시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전(殿)이나 각(閣)보다 더 위에 속하는 궁(宮)을 붙여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도 한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가 성불하고 『화엄경』을 설한 부다가야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寂滅道場]을 상징한다. 법당에서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을 마련하고 있다. 진신사리는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을 만들어 봉안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으로 양산 영취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상원사, 인제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정선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이 있다. 정암사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자장(慈藏)이 당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몸체 사리인 불사리와 두개골 사리인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곳이다.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가 왜적을 피해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다.

(2) 흥천사 사리전

조선시대의 사리전으로는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원찰인 흥천사(興天寺)에 조성된 것이 대표적이다. 1396년(태조 5) 신덕왕후 강씨(康氏)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왕후를 취현방(聚賢坊) 북쪽의 정릉(貞陵)에 장사 지내고, 다음 해에는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흥천사를 창건했다. 흥천사가 낙성된 후 1398년(태조 7) 5월 태조는 흥천사 북쪽에 바로 사리전을 따로 조성하도록 명했다(『태조실록』 7년 5월 1일). 당시 태조는 흥천사에 직접 행차하여 사리전의 터를 직접 살펴보는가 하면, 공역 중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현장을 방문해 독려했던 것으로 전한다(『태조실록』 7년 5월 18일). 태조는 아들 정종에게 왕위를 선양한 후에도 사리전의 공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독촉하여, 1399년(정종 1) 10월 마침내 사리전의 낙성식이 거행되었다(『정종실록』 1년 10월 19일). 완공된 사리전에는 3층탑이 있고, 그 내부에 석가모니의 두골사리(頭骨舍利)와 『보리수엽경(菩提樹葉經)』 등을 안치했다. 태조의 각별한 정성과 관심 속에서 1년 반의 공역을 거쳐 완공된 흥천사 사리전은 그 규모나 구조, 모양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1435년(세종 17) 5월 흥천사의 중수를 두고 권채(權採)가 쓴 권문(勸文)에 따르면 사리전은 8각의 목조 건물로 석탑을 전각 안에 두고 있어서 사리전이 무너지면 석탑도 따라 무너지는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현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사리전(혹은 사리각)은 5층 혹은 3,4층이라고 하여 그 정확한 층수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1504년(연산군 10) 흥천사가 화재로 전소되지만 사리전만이 화재를 면했다(『연산군일기』 10년 12월 9일). 하지만 1510년(중종 5) 화재로 사리전도 모두 소실되어 그 자취는 남아 있지 않다(『중종실록』 5년 3월 28일).

고려말의 문인 이색의 「천보산회암사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에 의하면 고려말의 대사찰인 양주 회암사(檜巖寺)에도 1칸 규모의 사리전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목은집(牧隱集)』
  • 불교문화연구원 편, 『한국불교문화사전』, 운주사, 2009.
  • 이지관 편, 『가산불교대사림』,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6.
  • 허균,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돌베개, 2000.
  • 백순천, 「조선초기 흥천사의 조영과 역할」,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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