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案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차이 없음)

2017년 12월 10일 (일) 02:34 기준 최신판



혈 앞에 가까이에 있는 낮고 작은 산.

개설

주산(主山)이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면, 안산은 혈 앞에서 바람을 막아 주거나 물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마치 책상이나 밥상[案]과 같은 역할이나 모양을 갖는 데서 이름을 안산이라 하였다. 혈이 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주산이 뒤에 있어 잘 보이지 않은 대신, 안산은 앞에 있어 더 자주 보이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안산의 모양이 어떠한가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도 한다.

내용 및 특징

안산이란 개념이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에 모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장서(葬書)』에는 전안(前案)이란 용어가 등장하며, 『명산론(明山論)』에서는 안(案)이란 용어가, 『지리신법(地理新法)』에서는 안이라는 용어가 조(朝)라는 용어와 함께 빈번하게 등장한다. 안산이란 용어를 직접 거명하며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 조선조 지리학 고시과목은 『동림조담(洞林照膽)』이다.

『동림조담』에서는 안산의 형세는 마치 앉아 있을 때 책상이 있는 것과 같이 가까운 산을 귀하게 여기며, 가깝지 않으면 불가하다고 하였다. 안산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되는데, 수백 보를 넘어 밖에 있으면 그 힘이 적다. 다만 너무 가까이 있어 핍박하는 형상이 되는 것은 꺼린다. 또한 그 크기나 높이가 주산을 능가해서도 안 되고 단정한 모습이어야 한다. 대체로 안산의 높이는 아무리 높아도 혈처에 선 사람의 눈썹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아무리 낮아도 혈처에 선 사람의 가슴 높이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됨[齊眉應心]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렇게 안산을 중시하는 것은 안산이 있고 없음에 따라 그 혈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판별하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안산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길흉화복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림조담』보다 훨씬 후에 나온 풍수 서적인 『탁옥부(琢玉賦)』는, 『속대전(續大典)』에 지관 선발 고시과목으로 수록되었는데 안산을 그 생김새에 따라 첨수(尖秀) 안산, 삼태(三台) 안산, 일자(一字) 안산, 쌍천(雙薦) 안산, 전고(展誥) 안산, 요대(腰帶) 안산, 아미(蛾眉) 안산 등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조선조 지관 선발 과목에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중국에서 유입되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풍수서 『인자수지(人子須知)』는 안산을 그 출처에 따라 크게 본신안산(本身案山)과 외래안산(外來案山) 두 가지로 나눈다.

본신안산이란 청룡이나 백호의 산줄기 가운데 하나가 더 길게 뻗어 나가 안산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본신안산은 한양의 남산이다. 남산은 백호인 인왕산이 계속 뻗어 내려가 다시 안산을 이룬 형태이다. 외래안산은 청룡·백호가 아니라 물[水] 건너 다른 산이 안산을 이루는 것을 말하는데, 내명당의 물길을 거둬 주게 하면[逆水] 역시 좋은 것으로 본다. 본신안산과 외래안산 가운데에 본신안산을 일반적으로 더 좋은 것으로 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안산은 태조대 계룡산 도읍 터를 두고 안산의 오고 가는 물을 살펴본다는 언급을 시작으로 비교적 자주 오르내린다. 예를 들면 안산은 헌릉(獻陵) 단맥 논쟁에서 고중안(高仲安)이 최양선(崔揚善)의 주장을 반박할 때 인용되어 있다. 그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형국을 이루는 헌릉의 안산은 봉요(蜂腰)의 형상을 갖추고, 길로 또 끊기니 음절목의 형상이라는 설명을 통해 단맥 논의를 불식시키고자 하였다(『세종실록』 12년 7월 7일). 또 목효지(睦孝智)는 안산이 분명해야 길지라는 상소를 올리는 등(『세종실록』 23년 8월 25일), 조선시대에 안산은 대체로 능묘 앞의 산이라는 고유의 의미와 함께 그것이 갖추어야 할 조건 등이 아울러 언급되었다.

변천

안산이란 용어는 조선전기부터 후기까지 풍수 서적마다 혹은 이를 인용하는 풍수학인에 따라 안산 이외에 안대(案對), 전안(前案), 근안(近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다만 민간에서는 안대를 강조하여 터를 잡을 때 내룡이나 주산을 살피지 않고 안대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조선후기 이후 풍수설이 민간에 확대·유포되면서부터의 일이다.

참고문헌

  • 『동림조담(洞林照膽)』
  • 양균송 저·김두규 교감역주, 『감룡경·의룡경』, 비봉출판사, 2009.
  • 채성우 저·김두규 역해, 『명산론』, 비봉출판사 2002.
  • 호순신 저·김두규 역해, 『지리신법』, 비봉출판사, 2004.
  • 徐善繼·徐善述, 『地理人子須知』, 臺灣, 竹林書局, 200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