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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2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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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아양마 |
한글표제 | 아양마 |
한자표제 | 衙養馬 |
상위어 | 마정(馬政) |
관련어 | 사복시(司僕寺), 관설목장(官設牧場), 마장가목(馬裝價木), 고실가(故失價), 분양마(分養馬) |
분야 | 경제/재정/공물·진상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아양마(衙養馬)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37년 2월 16일 |
각 군현에서 분양받아 기르는 말.
개설
말은 전근대 주요 운송 수단으로서 기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시에는 군대의 기동력을 좌우하는 요소로서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조선 정부는 1392년(태조 1)에 고려의 제도를 모방하여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마정(馬政)을 담당하게 하였다. 또 각 도에 관설목장(官設牧場)을 설치하거나 각 군현에 말을 배정하여 말을 사육하도록 하였다. 대동법이 실시되기 전, 공물(貢物)을 현물로 납부하던 공납제(貢納制)에서는 각 군현에 분양한 말을 서울로 거두어들일 때 수송 과정에 필요한 비용은 사복시가 아닌 해당 군현에서 부담하도록 하였다.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마장가목(馬裝價木)·고실가(故失價)·견군가(牽軍價) 등의 수송 관련 비용이 대동미(大同米)에 포함되어 지급되었다.
내용 및 특징
현물 공납제 하에서는 사복시에서 각 군현에 분양했던 소나 말을 서울로 거두어들일 때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규정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와 관련된 비용을 각 군현에 부담시켜 추가적으로 징수하였다. 예를 들어 사복시에는 각 군현에서 분양마를 상납할 때 말을 치장하는 데 드는 비용인 마장가목을 징수하였다. 또 분양마를 잃어버릴 경우 이를 변상하는 고실가도 책정해 두었다. 1594년(선조 27) 경기감사김수(金睟)는 사복시에서 분양마 고실가를 시가(時價)의 2배나 책정하고 있다고 개탄하였다(『선조실록』 37년 2월 16일).
대동법에서는 각 군현에서 분양마를 상납할 때 마장가목 2필을 해당 관의 유치미(留置米)에서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고실가에 대해서는 말 1필에 속전(贖錢) 60냥을 변상하되 30냥은 말을 길렀던 사양자(飼養者)가 부담하고 30냥은 유치미에서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충청도·전라도에 배정한 분양마를 사복시에 상납할 때에는 말 1필에 말몰이꾼인 견군(牽軍) 1명씩을 배정하여 그 역가(役價)를 해당 관의 대동미에서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분양마 고실가는 말 1필에 가포(價布) 40필을 책징하되, 20필은 해당 관의 대동미에서 지급하고 20필은 사양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 경비는 불시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시비에 속하는 것이었다.
『속대전』「병전(兵典)」구목(廐牧)에 따르면, 각 군현에 분양한 말이 죽거나 여위거나 또는 길들지 않았으면 수령을 논죄하였다. 1필이면 엄중히 추문하고, 2필이면 1자급을 강등하며, 3필이면 2자급을 강등하고, 4필이면 파직하였다. 말이 죽었을 경우에는 살아 있는 말로서 추징하였다. 말이 죽거나 여위어서 응당 2자급을 강등할 경우, 당상관이면 자급을 강등하고 당하관이면 녹봉을 감봉하였다.
변천
조선시대 내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말의 육성과 관리는 상당 부분 지방관아와 민간에 의존하고 있었다. 대동법 시행 이후에는 지방유치미 내에 민간의 말을 빌려 사용하는 쇄마(刷馬) 비용뿐 아니라 말을 상납할 때 드는 비용이나 잃어버렸을 때 내는 비용 등을 포함시켰다. 이는 말의 상납 및 관리 비용을 지방 경비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조선후기에는 고마법이 성립하여 관에서 직접 말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민간의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고마청과 같은 민고의 출현 역시 이러한 지방 재정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김옥근, 『조선 왕조 재정사 연구 Ⅲ』, 일조각, 1988.
- 남도영, 『한국마정사』,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199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