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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6 기준 최신판



중국 황제가 승하한 조선 왕에게 혹은 왕이 세자와 비빈(妃嬪) 및 정2품 이상과 공신(功臣)에게 시호를 내리는 예법.

내용

조선에서는 왕이 승하하면,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부고하고 시호(諡號)와 승습(承襲)을 청했다. 명나라로 건너간 사신이 시호를 청하면, 명나라에서는 이 행장의 내용을 근거로 적절한 시호를 선택하여 두 자의 시호를 결정하고는 사신을 파견하여 사시했다.

‘사시의주(賜諡儀註)’는 1408년(태종 8) 9월에 태조의 국상을 당하여 명나라 예부(禮部)에서 조정 사신 기보(祁保) 등을 통해 보내온 사시의주를 참고하여 1423년(세종 5)에 이를 제정했다. 그 후 재정비하여 『세종실록』 「오례」의 ‘영사시제급조부의(迎賜諡祭及弔賻儀)’와 ‘사시의’로 완성되었다. 사시의는 혼전에서 거행했다.

한편 조선에서도 왕이 신료들에게 시호를 내려주었다. 그 대상은 종친과 문·무관 실직(實職) 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자와 종2품의 대제학(大提學)을 비롯해 비록 정2품은 아니지만 유현(儒賢)이나 순절인은 먼저 정경(正卿)으로 추증한 뒤 시호를 내렸다.

용례

王將祗迎賜諡 出次于仁政殿前西階之下幕次(『광해군일기(중초본)』 1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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