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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5 기준 최신판



대승불교의 보살계를 받은 불제자.

개설

보살계제자(菩薩戒弟子)는 자신의 수행을 위해 계율을 지킬 뿐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겠다고 선언한 불교 수행자라는 의미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이 보살계를 받고 부처의 제자가 되어 불교에 귀의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초기까지 이어져, 기신재(忌辰齋)나 경찬회(慶讚會)의 소문(疏文)에 ‘보살계제자 조선 국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숭유억불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성종대 이후에는 보살계제자라는 표기가 삭제되었다.

내용 및 특징

보살계제자는 대승불교의 보살계를 수지한 제자라는 뜻이다. 불교의 계율은 악(惡)을 방지하기 위한 윤리 덕목인 계(戒)와 그 규범인 율(律)을 합한 개념이다. 계는 윤리 덕목이므로 강제성이 없으나, 계가 율로 제정되면 구속력을 갖는다. 그런데 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자신은 물론이고 남까지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실천하기에 부족하다. 그런 까닭에 대승불교에서는 계를 지킬 뿐 아니라 널리 선행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요구하며 보살계를 제시하였다.

보살계제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범은 『범망경(梵網經)』에 제시되어 있는 십중계(十重戒)이다. ① 살생하지 말 것, ② 도둑질하지 말 것, ③ 사음하지 말 것, ④ 거짓말하지 말 것, ⑤ 술을 팔지 말 것, ⑥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 것, ⑦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 것, ⑧ 남에게 인색하여 모욕을 주지 말 것, ⑨ 성내면서 상대방의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동을 하지 말 것, ⑩ 삼보를 비방하지 말 것 등이다. 보살계의 정신은 섭율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섭중생계(攝衆生戒)의 삼취정계(三聚淨戒)에 잘 나타나 있다.

국왕의 수계

고려시대의 왕은 대부분 보살계를 받았다. 덕종 1회, 정종 1회, 문종 5회, 선종 2회, 숙종 1회, 예종 7회, 인종 16회, 의종 7회, 명종 6회, 신종 1회, 강종 2회, 고종 6회, 원종 4회, 충선왕 1회, 충목왕 1회, 공민왕 1회 등 총 62회나 계를 받았는데, 인종의 경우 수계(受戒)를 8회, 보살계도량을 8회 개설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초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1424년(세종 6) 3월에 기신재소(忌晨齋疏)의 형식에 대해 논의할 때, 이조 판서허조(許稠)가 제자가 아니면서 제자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왕을 보살계제자라고 표현하지 말 것을 건의하였으나, 세종은 전례대로 할 것을 명하였다(『세종실록』 6년 3월 12일). 1442년(세종 24) 3월에는 흥천사(興天寺)에서 경찬회를 개설하였는데, 사관들은 남수문(南秀文)이 소문에서 왕을 보살계제자라 표현했다며 비판하였다. 또 1446년(세종 28) 4월에도 윤형(尹炯)이, 대자암(大慈庵)에서 삼재(三齋)를 개설하고 보살계제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비판하였다. 그 뒤 성종 연간인 1477년(성종 8) 10월에는 손비장(孫比長)이 기신재의 소문 첫머리에 ‘보살계제자 조선 국왕’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 것을 건의하자 정승들에게 이를 의논하도록 하였는데, 정승들의 의견도 그와 같으므로 이후로는 보살계제자라는 표현을 빼고 ‘조선 국왕’으로 칭하도록 하였다(『성종실록』 8년 10월 22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목정배, 『계율론』, 불지사, 1988.
  • 사토 미츠오[佐藤密雄] 저, 최창식 역, 『율장』, 동국역경원, 1994.
  • 한정섭, 『불교계율해설』, 불교통신대학,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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