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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2 기준 최신판



① 조선시대에 정립된 우리 고유의 시가 문학의 한 장르.

② 노래의 내용을 담고 있는 글.

개설

① 시조(時調)와 더불어 조선시대 운문의 대표적인 장르이다. 한 행(行)이 4음보로 되어 있고, 3·4조 혹은 4·4조의 율격을 지녔으며, 분량 제한이 없는 시가(詩歌) 형식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변격이 나타나게 되었고, 대부분 우리말로 표기되어 있다.

② 노랫말의 사(詞)와 사(辭)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가사(歌詞)와 가사(歌辭)는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 및 특징

가사는 시기별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전기에는 대부분 사대부들이 향유했지만, 후기에는 서민들은 물론이고 여성들까지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향유하는 장르로 변모했다. 기행·애정·풍물·자연·현실 비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체험이나 느낌·생각 등이 주요 내용이며, 그에 따라 서정(抒情)·서사(敍事)·교술(敎述)의 특징이 두루 나타난다.

성종 때에 장악원의 청에 따라 가사와 악장(樂章)을 가르치는 일을 논하였으며(『성종실록』 15년 4월 17일), 고려속요인 「서경별곡」에 따라 가사를 짓는 것이 어떠한지를 예조에 묻도록 전교한 일도 있었다(『성종실록』 19년 4월 4일). 세조 때에는 영순군이부에게 명하여 여덟 명의 기생에게 언문 가사를 부르게 했는데, 이것이 세종 때의 「월인천강지곡」이었음을 언급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가사라는 것은 장르의 의미가 아니라 노랫말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세조실록』 14년 5월 12일).

1) 가사의 발생과 기원

가사 문학의 발생 시기에 대한 논의는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가사’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신라 월명사의 「도솔가」를 근거로, 신라시대 말에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두 번째는 가사가 고려속요나 경기체가처럼 긴 노래 형식의 일종으로, 3음보인 경기체가에서 파격을 이루어 4음보로 변한 것이 가사라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가사의 기원은 고려시대 말이다.

세 번째는 나옹(懶翁) 화상의 「서왕가(西往歌)」가 나오기 전에 다른 장르인 별곡(別曲), 악장, 시조 등이 크게 성행하였으므로, 가사의 발생 시기를 조선시대 초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네 번째는 가사는 우리말로 된 시가 문학의 한 장르이기 때문에 한글 창제 후 양반 사대부에게 한글이 널리 전파된 세조대 이후에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2) 최초의 가사 문학 작품

가사 문학의 시초로는 두 작품이 꼽히는데, 고려시대 말 나옹 화상의 「서왕가」와 조선시대 초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이다.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히 논증된 바는 없다.

변천

1) 전기 가사

전기에는 시조를 창작한 사대부들이 가사 작품의 주요 창작자였다. 그들은 유교 덕목을 바탕으로 교훈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데 가사를 활용했다. 특히 군자가 갖춰야 할 덕목인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노래한 작품이 많다.

2) 후기 가사

후기에는 작자층이 사대부는 물론이고 평민과 여성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사대부 가사도 교훈과 유교 사상을 중시했던 전기와 달리 기행·유배·풍물·종교·애정 등 여러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3) 개화기 가사

이념적·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의 작품이다. 연이 나뉘었고 분량이 줄었다. 반복·후렴을 사용하여 노래로 부르도록 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내용과 관련된 주제가 대부분이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김흥규, 『한국문학의 이해』, 민음사, 1986.
  • 류연석, 『한국가사문학사』, 국학자료원, 1994.
  • 윤덕진, 『조선조 장가 가사의 연원과 맥락』, 보고사, 2008.
  • 조동일 외, 『한국문학강의』, 길벗,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