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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0 기준 최신판



유교 사회에서 지켜야 할 덕목들을 글 또는 그림으로 나타낸 병풍.

개설

유교에서 중요시하는 도리, 인륜, 예의범절 등을 병풍에 그려 일상생활에서 항상 되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계언병(戒言屛)의 종류로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적은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병풍, 예의범절과 정신의 수양을 적은 경재잠도(敬齋箴圖) 병풍, 제사의 순서를 적은 병풍 등이 있다.

덕목이 되는 글자와 상징물이 함께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간행되었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등의 책에서 발췌한 고사 및 설화 등이 병풍의 주제가 되었다.

형성

당나라 태종대에 개국공신이었던 방현령(房玄齡)이 가훈이나 계서(戒書)를 적은 병풍을 집 안에 비치하여 경계로 삼게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권세가 높아질수록 교만해지거나 사치하는 것을 경계하고 집안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 덕목이 되는 글씨를 병풍에 쓰게 하였다.

현존하는 병풍들이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것이라 우리나라에서 계언병이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효제문자도 병풍이 1431년(세종 13) 『삼강행실도』의 간행을 계기로 하여 유교 윤리를 알리기 위한 교화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왕실은 유교의 윤리와 정신을 담은 계언병을 설치하여 교훈으로 삼았는데 『명종실록』에 1545년(명종 즉위) 인종이 서거한 후 작성된 대행왕의 행장(行狀)에는 침궁(寢宮)에 효자도, 경직도, 계언병 등을 설치하여 항상 경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명종실록』 즉위년 7월 27일). 조선후기에는 민간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어 민화로도 제작되었다.

내용 및 특징

(1) 효제문자도 병풍

계언병 중에서 가장 많이 제작되었으며 조선후기에 민화 병풍으로 제작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유학(儒學)의 윤리관을 압축한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8글자를 쓴 문자도로 주로 8폭의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개인의 윤리적 도덕을 강조하는 『논어(論語)』의 ‘효제충신’ 4글자에 『관자(管子)』에 유교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나오는 ‘예의염치’ 4글자를 합하여 각 문자는 그와 관련된 고사, 상징물과 함께 표현되었다.

‘효’ 자는 잉어, 죽순, 부채, 귤, 거문고 등을 상징물로 함께 그렸다. 잉어와 대나무는 효자로 이름난 옛 중국의 맹종(孟宗), 왕상(王祥)의 고사를 그린 것이다. 맹종은 겨울철에 죽순이 드시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대나무 숲에서 눈물을 흘리니 죽순이 자라나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고, 왕상은 한겨울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고 싶다는 계모를 위해 얼음을 깨고 잉어를 낚았다고 한다. 베개와 부채는 한나라 때 황향(黃香)이라는 효자가 더울 때는 부모가 누워 주무시는 베개에 부채질을 하였다는 고사에서, 귤은 한나라 때 육적(陸績)이라는 아이가 여섯 살 때 원술(袁術)이 주는 귤을 품에 품었다가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다는 고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거문고는 순임금이 생모가 죽고 계모가 들어와 이복동생을 낳은 후 순(舜)을 죽이려 하였으나 이를 알고도 평상시와 같이 거문고를 탄 고사에서 나왔다.

‘제’ 자는 할미새, 산앵두나무,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 장면을 상징물로 함께 그렸다. 할미새와 산앵두나무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로 할미새가 걸어갈 때나 날아갈 때 울기를 그치지 않으며 서로 협력하는 모습에서, 산앵두나무는 줄기가 긴 꽃에 꽃받침이 함께 피는 형상에서 형제애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충’ 자는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고사에 나오는 잉어와 용 등을 함께 그렸다. 어변성룡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고사로 해마다 봄철이 되면 황하 상류인 용문 협곡에 잉어가 모여 급류를 타고 뛰어오르는데 이때 성공한 잉어가 용이 된다는 의미로 잉어와 용 둘 다 등용문을 상징한다.

‘신’ 자에는 서왕모(西王母)에 대한 고사를 형상화한 것으로 청조와 흰기러기를 함께 그렸다. 청조는 얼굴이 사람 모습이고 몸통이 새의 형상으로 된 상상의 새로, 흰기러기와 함께 서신을 입에 물고 와서 전달하는 모습이 언약과 믿음을 상징하였다. ‘예’ 자는 예의의 근본으로 일컬어지는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낙수로부터 나온 거북이 등에 글이 적혀있었던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고사와 함께 거북이, 책, 별자리, 구름 등이 함께 그려졌다.

‘의’ 자는 새, 도원결의의 장면을 표현한 복숭아꽃으로 장식하였다. ‘염’ 자에는 배가 고파도 벌레나 조 등은 먹지 않으며 대나무 열매만 먹는 봉황과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아는 게가 상징물로 등장한다. ‘치’ 자에는 나라가 망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은둔하면서 고사리만 먹으며 달과 매화를 벗 삼아 생애를 마감한 백이숙제(伯夷叔齊)의 고사를 담았다.

(2) 경재잠도 병풍

경재잠도 병풍은 주자(朱子)의 「경재잠」을 적은 병풍이다. 조선시대에는 주자의 「경재잠」을 적은 병풍과 더불어 퇴계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병풍으로 만든 성학십도병이 계언병의 하나로 유행하였다.

『성학십도』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선조가 성군(聖君)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게 이황이 성리학의 중요 항목을 도설화한 것이다. 이 항목 중 제9도가 경재잠도이며 선조를 비롯한 많은 왕들이 책의 내용을 병풍으로 만들어 비치해두고 살피며 이황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 유홍준·이태호, 『문자도』, 대원사, 1993.
  • 허균, 『전통미술의 소재와 상징』, 교보문고,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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