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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0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궁중의 무속적 일을 맡아하던 무녀.

내용

궁중 일을 하는 무당이 모두 국무(國巫)는 아니며, 그 가운데 한 사람을 국무로 하였다. 수령의 관아에 출입하는 무당은 아무(衙巫)라 하였다. 국무로 선발되는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전직 국무당이란 표현이 나오는 점으로 미루어 종신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 조선초기에는 무속 관청인 성수청(星宿廳)에 소속된 것 같지만, 성수청이 정식 국가 조직의 일부가 아니므로, 국무라는 지위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어떠했는지도 미상이다.

국무는 왕실의 복을 비는 별기은(別祈恩)이나 재앙을 물리치는 기양의례(祈禳儀禮) 등을 주관했으며, 간혹 지방에 파견되어 굿을 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8년 11월 26일).

이로 말미암아 국무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렸다. 예컨대 조선시대 무당은 도성 내 거주가 금지되었고 국립 의료기관인 동서활인서에서 환자를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국무는 예외적으로 도성 안 거주가 허용되었으며, 동서활인서에서의 의무도 면제되었다. 그러나 동전 주조에 필요한 구리나 명나라에 바칠 말을 관리들에게 징수할 때는 국무도 포함되었으며, 그들의 부담은 2품관과 같았다. 이로 미루어 국무당의 경제력은 상당했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 무속은 대표적인 이단이었고, 따라서 유교 관료들에 의해 국무제 폐지가 여러 차례 거론되었으나, 조선 왕조 말기까지 존재하였다. 조선말 궁중 전속 무녀인 ‘나랏 당주’는 바로 그 전통을 이은 것이라 하겠다.

용례

且今巫女皆黜城外 使救東西活院病人 其稱國巫者 占巫女二十餘人 尙在城中 請除國巫外 其餘皆屬活院 使救疾病(『세종실록』 25년 10월 16일)

참고문헌

  • 최종성, 『조선조 무속국행의례 연구』, 일지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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