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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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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후직 |
한글표제 | 후직 |
한자표제 | 后稷 |
동의어 | 후직씨(后稷氏) |
관련어 | 구망(句芒), 국직(國稷), 대직(大稷), 사직(社稷), 선농(先農), 신농(神農), 욕수(蓐蕨收), 우사(雩祀), 축융(祝融), 태직(太稷), 현명(玄冥), 후토(后土) |
분야 | 왕실/왕실의례/예기 |
유형 | 고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박봉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후직(后稷) |
인간에게 처음 농사를 가르쳤다고 알려진 농사의 신.
개설
인간들에게 농사를 처음 가르친 것으로 알려진 신화적인 인물로서, ‘후직씨(后稷氏)’라고도 별칭된다. 고려시대부터 국가 제례인 사직제(社稷祭)에 편입되어 오곡(五穀)의 신인 대직(大稷)의 배위(配位)로서 제향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사직제에서 국직의 배위로서 제향되었다.
내용
후직의 성(姓)은 희(姬)이고 이름은 기(棄)이다. 어머니인 강원(姜嫄)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은 후 후직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농사를 가르쳐서 널리 보급시킨 공로로 후직(后稷)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며, 후대에는 농사를 다스리는 신으로 널리 숭배되었다. 후직이 국가 제례의 봉행 대상이 된 것은 당대(唐代)부터로 추정되는데, 후토(后土)를 토지의 신인 대사(大社)의 배위로, 후직을 오곡의 신인 대직의 배위로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수용·참조하여 고려초기인 991년(고려 성종 10)에 사직단(社稷壇)을 세우고 사직 제례를 거행하면서 후토와 후직을 대사, 대직의 배위로 제향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1395년(태조 4)부터 사직 제례를 시행하면서 후토, 후직을 계속해서 대사, 대직의 배위로 제향하였다. 또한 후직은 중사(中祀)인 선농(先農) 제례에서 신농씨(神農氏)의 배위로도 제향되었고, 역시 중사로 비를 기원하는 제사인 우사(雩祀)의 여섯 신령, 즉 구망(句芒)·축융(祝融)·욕수(蓐收)·현명(玄冥)·후토·후직 등에도 포함되어 다른 다섯 신령과 함께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대한예전(大韓禮典)』
-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