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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13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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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문소전신제악장 |
한글표제 | 문소전신제악장 |
한자표제 | 文昭殿新製樂章 |
관련어 | 신의왕후(神懿王后), 원경왕후(元敬王后), 제향악장(祭享樂章)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작품 |
집필자 | 김세종 |
상세유형 | 악장(樂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문소전신제악장(文昭殿新製樂章) |
조선 제1대 왕 태조와 신의왕후, 제3대 왕 태종과 원경왕후의 신위를 모신 제향 악장.
개설
문소전은 1433년(세종 15) 3월 15일에 태조와 4대조를 봉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경복궁 연춘문 안에 위치하였다. 문소전 제향에 왕이 직접 제례를 행하는 것을 친행(親行)이라 하고, 왕세자나 영의정 등 관원이 대신 행하는 것을 섭행(攝行)이라고 하면서 두 종류의 악기 편성에 따른 음악과 악장을 새로 제정하게 되었다.
내용 및 특징
문소전 제향 음악은 1427년(세종 9) 12월 21일 예조에서 올린 기록에 의하면 “종묘 제향에 옛 제도를 써서 향악(鄕樂)을 섞어 연주하고, 문소전·광효전(廣孝殿)에는 속례(俗禮)에 따라 오로지 당악(唐樂)만을 연주하여 서로 틀린 것이오니, 청하옵건대 향악은 종묘에 쓰지 말고, 문소전·광효전의 종헌(終獻)에만 쓰게 하소서.”하였다.
또 1433년(세종 15) 5월 5일 기록에는 문소전에서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낼 때에 당상·당하악과 섭행할 때의 당상·당하악에 대한 악현을 자세히 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친행 시 당상악(堂上樂)은 박(拍)을 가운데 두고, 첫째 줄에는 금(琴)·슬(瑟)·생(笙)·방향(方響)을 왼쪽, 금·슬·화·방향을 오른쪽에, 둘째 줄에는 가(歌) 여섯을 왼쪽에, 또 여섯을 오른쪽에 두고, 셋째 줄에는 용관(龍管)·필률(觱篥)·당적(唐笛)·퉁소(洞簫)·아쟁(牙箏)·당비파(唐琵琶) 등을 왼쪽에, 용관·필률·당적·통소·대쟁(大箏)·당비파 등을 오른쪽에, 넷째 줄에는 교방고(敎坊鼓)를 가운데 두고, 장고(杖鼓) 둘을 왼쪽에, 둘을 오른쪽에 두었다.
친행 시 당하악(堂下樂)은 박을 중간에 두고, 첫째 줄에는 현금(玄琴)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고, 향비파(鄕琵琶)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며, 가야금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고, 당비파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며, 해금(嵇琴)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둔다. 둘째 줄에는 가(歌) 넷을 왼쪽에, 넷을 오른쪽에 두고, 향필률(鄕觱篥)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고, 대적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둔다. 셋째 줄에는 교방고를 가운데 두고, 장고 둘을 왼쪽에, 둘을 오른쪽에 두고, 넷째 줄과 다섯째 줄에는 용관·당필률·당적·통소·당비파·방향 등을 아울러 좌우에 나누어 둔다. 여섯째 줄에는 교방고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고, 장고 넷을 왼쪽에 넷을 오른쪽에 둔다.
섭행할 때의 당상악은 박을 가운데 두고, 첫째 줄에는 거문고와 생을 왼쪽에, 거문고와 화(和)를 오른쪽에 두고, 둘째 줄에는 방향을 가운데 두고, 가 셋을 왼쪽에, 셋을 오른쪽에 두고, 셋째 줄에는 필률·통소·당비파를 왼쪽에, 당적·용관·당비파를 오른쪽에 두고, 네째 줄에는 교방고를 가운데 두고, 아쟁과 장고를 왼쪽에, 대쟁과 장고는 오른쪽에 둔다.
섭행할 때의 당하악은 박이 중간에 있고, 첫째 줄에는 방향을 가운데 두고, 현금과 가야금을 왼쪽에, 향비파와 당비파를 오른쪽에 두고, 둘째 줄에는, 대적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고, 가 둘을 왼쪽에, 둘을 오른쪽에 두고, 셋째 줄에는 교방고를 가운데 두고, 장고 하나를 왼쪽에, 하나를 오른쪽에 두고, 넷째 줄에는 방향을 가운데 두고, 용관·당적·당비파 등을 왼쪽에, 필률·통소·당비파를 오른쪽에 두고, 다섯째 줄에는 교방고를 가운데 두고, 장고 둘을 왼쪽에, 둘을 오른쪽에 두었다.
이후 1450년(문종 즉위) 11월 22일에는 박연이 단묘의 보수, 가동의 양성, 여악의 폐지, 악보의 간행 등을 상언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박연이 1427년(세종 9) 12월 21일의 “향악은 종묘에 쓰지 말고, 문소전·광효전의 종헌에만 쓰게 하라.”는 전지 이후로, 꾸준히 가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연이 상소한 1450년까지만 해도 문소전 악장은 맑고 고운 가동에 의해 불려지지는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소전 제향 음악과 악장은 환환곡(桓桓曲)·미미곡(亹亹曲)·유황곡(維皇曲)·유천곡(維天曲)·정동방곡(靖東方曲) 등 속악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환환곡과 미미곡은 초헌에, 유천곡과 유황곡은 아헌에, 정동방곡은 종헌에 연주되었음을 『세종실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따라서 문소전 제향 초헌에는 미미곡을 연주하였는데, 이는 1433년 12월에 박연의 상소에 의하여 처음으로 명명된 태종의 업적을 찬양한 악장이었다. 또 문소전 제향 아헌에는 융천곡과 유황곡을 연주하였는데, 유황곡은 1433년에 문소전 제향에 쓰기 위하여 새로 지은 악장으로, 문소전·연은전(延恩殿)·소경전(昭敬殿) 등 제향의 아헌악(亞獻樂)으로 연주되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문소전 제향 아헌악으로 1실(室)은 유황곡, 2실은 유천곡, 3실은 오황곡(於皇曲), 4실은 유상곡(維上曲), 5실은 유아곡(維我曲)을 각각 연주하였다. 악장은 세종 때 새로 제작된 것으로, 노랫말이 ‘유황천(維皇天)’이라는 문구로 시작되기 때문에 유황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선율은 고려 때의 향약인 풍입송(風入松)에서 발췌하였으며, 악조는 황(黃)·태(太)·중(仲)·임(林)·남(南)의 5음음계로 황종평조(黃鐘平調)에 속한다.
문소전 제향 종헌에는 정동방곡이 연주되었다. 정동방곡은 1393년(태조 2)에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도가(頌禱歌)로 5장 형식으로, 태조의 무공과 조선의 건국을 송축하는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문소전 제향 악장은 조선초기의 악가(樂歌)와 고려의 속악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자료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 고려속요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추존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는 종묘 음악과도 관계성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