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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09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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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육화탕 |
한글표제 | 육화탕 |
한자표제 | 六和湯 |
상위어 | 의학(醫學) |
하위어 | 감초(甘草), 곽향(藿香), 모과(木瓜), 반하(半夏), 백편두(白扁豆), 인삼(人參), 적복령(赤茯苓), 축사(縮砂), 후박(厚朴), 행인(杏仁), 향유(香薷) |
관련어 | 청서육화탕(淸暑六和湯) |
분야 | 문화/의학·약학/처방 |
유형 | 약 |
집필자 | 김호 |
약재 | 향유(香薷), 후박(厚朴), 적복령(赤茯苓), 곽향(藿香), 백편두(白扁豆), 모과(木瓜), 축사(縮砂), 반하(半夏), 행인(杏仁), 인삼(人參), 감초(甘草) |
약효 | 서기(暑氣)에 손상되어 토사곽란이 계속되는 증세를 치료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육화탕(六和湯)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24년 윤5월 17일, 『성종실록』 25년 5월 29일 |
여름철에 더위 먹어 생긴 여러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
개설
육화탕(六和湯)은 더위가 심장(心腸)과 비장(脾腸)을 상(傷)하게 하여 구토와 설사를 하고, 더러는 곽란(霍亂)으로 근육(筋肉)이 뒤틀리거나 부종(浮腫), 학질(瘧疾)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때 종종 사용했던 처방이다. 『의림촬요』에 심비(心脾)가 불순하여 기운의 승강이 일정하지 않은데다 곽란과 근육의 뒤틀린 증상, 구토와 설사, 한열이 교대로 나타나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어지럽고 두통이 있으며 전신에 부종이 나타나고 피로하여 쉽게 권태하는 증세 등을 치료하는 약물로 소개하였다. 이후에 『구급간이방』에는 여름에 더위를 먹어 죽을 것 같은 경우 육화탕을 처방하였고, 『동의보감』에는 학질이 오래되어 치료되지 않을 경우에도 처방하였다. 또한 더운 여름 서기에 심비가 손상되어 구토와 설사, 나아가 곽란이 심하여 근육이 뒤틀리고 부종이 나타나는 증세에 처방했다. 『인제지』에는 오래된 학질[久瘧]을 치료한다고 했다. 19세기의 『의방활투』 역시 『동의보감』과 동일하다.
이상과 같이 육화탕은 주로 오래된 학질 증세나 여름철 더위에 손상되어 구토와 설사 등의 증세가 발병했을 때 두루 활용되었던 대표적인 여름철 치료약이다.
제조법
향유(香薷)·후박(厚朴) 각 1.5돈, 적복령(赤茯苓)·곽향(藿香)·백편두(白扁豆)·모과(木瓜) 각 1돈, 축사(縮砂)·반하(半夏)·행인(杏仁)·인삼(人參)·감초(甘草) 각 5푼 이상을 썰어 1첩으로 만들고 생강 3편, 대추 2개를 넣어 물에 달여 복용한다.
효능
서기(暑氣)에 심장과 비장이 손상되어 나타난 토사곽란 및 유사학질 증세를 치료한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성종이 더운 여름철에 대비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의 관리들에게 육화탕(六和湯)을 하사하였으며(『성종실록』 24년 윤5월 17일), 무더운 여름에 옥중(獄中)에 갇힌 자들이 더위를 먹고 죽는 경우를 대비하여 의금부에서 얼음과 육화탕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전한다(『성종실록』 25년 5월 29일). 한편 『승정원일기』에는 효종대 내전(內殿)이 더위에 손상되어 육화탕을 복용하였고, 영조가 한여름에 서열(暑熱)을 공격하고 기를 보할 수 있는 육화탕을 복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여름철에 육화탕을 음다(飮茶)의 일종으로 여겨 늘 복용하였고, 특히 황련을 더하여 청서육화탕(淸暑六和湯)으로 즐기기도 했다.
참고문헌
- 『의림촬요(醫林撮要)』
-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 『인제지(仁濟志)』
- 『동의보감(東醫寶鑑)』
- 『의방활투(醫方活套)』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