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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후 태조이성계의 휘하 군사를 주축으로 구성한 군대.

내용

태조이성계는 조선 건국 직후 대대적인 중앙군제의 개편을 단행하였다. 즉 1392년(태조 1) 7월 개국과 동시에 종래 이성계의 휘하 군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도총중외제군사부(都摠中外諸軍事府)를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로 명칭을 바꾸고, 이를 다시 좌위(左衛)우위(右衛)로 나눈 다음 2군 6위, 즉 8위(衛)와 합쳐 10위로 개편하였다. 의흥친군위는 이성계의 휘하 군사들로 이루어졌으며, 조선 건국 이후 이들은 갑사(甲士)라 칭해지면서 국왕 측근 군사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태조는 각종 행행(行幸) 시에 이들만 시종하게 할 것을 명할 정도였다. 의흥친군위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절제사(節制使), 동지절제사(同知節制事) 등으로 편성된 지휘부가 통솔하였고 8위는 판팔위사(判八衛事), 팔위상장군(八衛上將軍)에 의해 지휘되었다. 이와 같이 의흥친군위와 8위는 군인의 성격도 다르고 지휘통솔체계도 달랐다. 이러한 지휘통솔체계는 통일적인 군사 지휘와 운용에 저해되었다. 이에 정도전(鄭道傳)은 1394년(태조 3) 군제 개혁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는데, 이 건의에 따라 이듬해 의흥친군좌위는 의흥시위사(義興侍衛司), 의흥친군우위는 충좌시위사(忠佐侍衛司)로 개편된다.

용례

立義興親軍衛 罷都摠中外諸軍事府(『태조실록』 1년 7월 18일)

참고문헌

  • 閔賢九, 『朝鮮初期의 軍事制度와 政治』, 韓國硏究院, 1983.
  • 尹薰杓, 『麗末鮮初 軍制改革硏究』, 혜안, 2000.
  • 金鍾洙, 「朝鮮初期 府兵制의 改編」, 『歷史敎育』77, 2001.
  • 柳昌圭, 「朝鮮初 親軍衛의 甲士」, 『歷史學報』106,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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