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사(別武士)"의 두 판 사이의 차이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10일 (일) 01:4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별무사 |
한글표제 | 별무사 |
한자표제 | 別武士 |
동의어 | 수솔마병(隨率馬兵) |
관련어 |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御營廳), 금위영(禁衛營)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선조~고종 |
집필자 | 윤훈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별무사(別武士)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37년 12월 17일 |
조선후기에 일반 병사나 한량 등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아서 선발하였던 마병 장교.
내용
처음에는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보군(步軍) 중에서 무예가 있는 자 약간 명을 뽑아서 말을 주어서 마병(馬兵)으로 편성하였다. 그 뒤에 한량(閑良) 중에서도 선발하였다. 수솔마병(隨率馬兵)이라고 불리워지다가->불리다가 1710년(숙종 36) 훈련대장이기하(李基夏)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별무사로 고쳤다. 훈련도감에는 모두 68명이 있는데 10명은 중군(中軍)에 속하고, 20명은 좌·우별장(左·右別將)에 나누어 속하고, 4명은 좌·우천총(左·右千摠)에 나누어 소속되었다. 금위영(禁衛營)에는 모두 30명으로 중군과 각위에 나누어 속해 있었다. 어영청(御營廳)에는 모두 30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중군에 10명이 소속되었다.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해적(海賊)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외방에도 설치하였다. 우선 평안도, 황해도와 강원도에 두었다. 영조 때에는 영남 지방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경기수영(京畿水營)에도 설치했다. 군영의 경우에는 대장소(大將所)나 중군소(中軍所)에 소속되어 호위나 사환 등의 임무를 맡았으며, 궁궐 밖의 순찰과 감독, 진(鎭)과 둔(屯)의 전답에서 세를 징수하거나 환곡을 거두는 일, 한성부 금송군(禁松軍)에 배속되어 산지기하는 일, 입직(入直) 등을 담당했다.
용례
且都監只訓錬步卒 更無馬兵 古之用兵者 騎步迭用 隨其所遇 而運用取勝 雖倭賊 未嘗無騎馬者 都監只訓鍊步卒 甚是爲欠 今宜爲竝鍊馬兵之計 旣有別武士射手等名稱 未審此人等 皆有其馬乎(『선조실록』 37년 12월 17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金友哲, 『朝鮮後期 地方軍制史』, 景仁文化社, 2001.
- 金鍾洙, 『朝鮮後期 中央軍制硏究』, 혜안, 2003.
- 車文燮, 『朝鮮時代軍制硏究』, 檀國大學校出版部, 1973.
- 최효식, 『조선후기군제사연구』, 신서원, 198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