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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활을 쏘는 사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활쏘기 구성원들의 모임.

개설

조선시대 주요 무술 가운데 하나인 활쏘기는 무반들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활터인 사정(射亭)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어 활쏘기의 운영뿐만 아니라 무반 및 무인들을 위주로 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다. 사계(射契)에 속한 자들은 주로 무과에 합격하기 전의 신분인 한량(閑良)으로서 돈을 갹출하여 재원을 만들고 이자를 불려 사사(射事)의 비용으로 사용했으며, 3월과 6월에는 전체 모임인 강신(講信)을 열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선조대에는 국가에서 활쏘기를 권장하며 무예를 장려하였다. 경연에서 신잡(申磼)은 백성이 행하도록 허가하여 사계에서 봄·가을 강신을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권면하게 한다면 은피(隱避)하는 사람이 없어서 곧 싸우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활쏘기를 권장하고 무예를 익히게 해 바로 전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선조실록』 29년 11월 1일).

변천

조선시대의 사계 자료로는 충청도 강경의 덕유정계(德游亭契)와 전라도 영광의 남극재(南極齋), 영암의 열무정(閱武亭) 사계 자료가 있다. 전라도 영광의 남극재가 소장하고 있는 사계 자료는 1587년(선조 20)에 창설된 영광 지방 실무 관리들의 상부상조 조직이었던 사계의 전통을 계승하여 1796년(정조 20)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동되는 노계(老契) 혹은 노소계(老所契), 그리고 1920년의 육영계(毓英契) 등의 자료이다. 이는 향촌 사회의 지배층 조직과 운영에 관해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김경옥, 「18세기 후반 영암 열무정(閱武亭) 사포(社布)계의 조직과 향촌 사회」, 『고문서연구』35, 2009.
  • 나선하, 「조선 중·후기 영광 이서 집단의 계 운영과 그 의미: 사계(射契)와 노계(老契)를 중심으로」, 『지방사와지방문화』6-1, 2003.
  • 정연태, 「조선 후기~해방 이전 자산가형(資産家型) 지방 유력자와 사계(射契): 포구 상업도시 강경(江景) 덕유정(德游亭)계 사례」, 『역사와현실』60,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