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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49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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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상궁 |
한글표제 | 상궁 |
한자표제 | 尙宮 |
상위어 | 궁관(宮官), 궁인(宮人), 내명부(內命婦), 여관(女官), 여직(女職) |
관련어 | 궁녀(宮女), 나인[內人], 내관(內官), 사기(司記), 상기(尙記), 상의(尙儀), 전언(典言) |
분야 | 정치/행정/관직·관품 |
유형 | 직역 |
시대 | 고려~조선 |
왕대 | 고려~조선 |
집필자 | 이미선 |
관품 | 정오품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상궁(尙宮)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0년 3월 8일, 『순조실록』 3년 12월 25일, 『현종실록』 2년 1월 5일, 『성종실록』 20년 3월 16일, 『태조실록』 6년 3월 15일, 『태종실록』 5년 1월 15일, 『세종실록』 10년 3월 8일 |
궁관(宮官)으로, 내명부의 정5품 관직.
개설
상궁(尙宮)은 내명부 정5품 궁관에게 주어진 위호(位號)이다. 1428년(세종 10) 상의(尙儀), 상복(尙服), 상식(尙食), 상침(尙寢), 상공(尙功), 궁정(宮正)과 함께 정5품에 속하였다. 『경국대전』「이전(吏典)」 ‘내명부’조에 상의와 함께 정5품으로 규정된 후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등 몇 차례의 법 개정에도 변동 없이 조선왕조 말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담당 직무
내명부 소속 여성들은 크게 내관(內官)과 궁관으로 구분되었는데, 내관은 종4품 숙원 이상의 왕의 후궁들이고, 궁관은 정5품 상궁에서 종9품 주변궁(奏變宮)에 이르는 궁인들이다. 『조선왕조실록』 1428년 3월 기사에 따르면, 품계에 명시된 궁관의 칭호와 직책에 따라 규정해놓은 고유 업무가 있었다. 상궁의 주된 역할은 중궁이 이동할 때 곁에서 인도하는 일과 사기(司記)와 전언(典言) 등을 통솔하는 일이었다.
사기는 정6품으로서 궁궐 내의 문서와 장부의 출입을 맡고, 전언은 정7품으로서 선전(宣傳)과 계품(啓稟)을 맡았다(『세종실록』 10년 3월 8일). 이들에 대한 통솔 책임으로 본다면 상궁은 왕후를 보좌할 뿐만 아니라 문서 출납 등의 일도 비중 있게 다뤘다고 하겠다. 이후 『경국대전』에서 사기의 명칭은 상기(尙記)로, 품계는 종6품으로 바뀌었고, 전언은 품계만이 종7품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이들을 통솔하는 상궁은 각기 소속 처소에 따라 또는 맡은 직무에 따라 역할을 하는 전문직 여성들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국가로부터 일정한 봉급을 지급받았다(『순조실록』 3년 12월 25일).
전문직 상궁 외에 간혹 국왕의 승은을 입었지만 내관에 오르지 못한 궁인들을 ‘특별상궁’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특별상궁은 정5품의 지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후궁의 작첩은 받지 못한 채 다른 후궁과 같이 왕의 곁에서 시침(侍寢)을 드는 역할을 하였다. 선조조의 박상궁(『현종실록』 2년 1월 5일), 예종조의 기상궁(『성종실록』 20년 3월 16일) 등이 그 예이다.
상궁은 궁관 가운데에서 으뜸이자 최고직이었다. 그들 중에 지위가 가장 높은 상궁을 제조상궁(提調尙宮)이라고 했는데, 궁궐의 모든 상궁이나 나인[內人]을 총괄하는 대표 상궁이었다.
변천
『고려사』「백관(百官)」 내직(內職)에 따르면, 고려 현종 때 상침(尙寢)·상식(尙食)·상침(尙針)과 함께 상궁의 직이 있었다.
1397년(태조 6) 내관의 칭호, 품계 및 정원 등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 상궁은 정5품, 종5품 각각 1명과 2명의 정원으로 모두 3명이었다. 이때 상궁 위로는 1품 현의(賢儀), 2품 숙의(淑儀), 3품 찬덕(贊德), 4품 순성(順成), 아래로는 6품 상관(尙官), 7품 가령(家令), 8품 사급(司給), 9품 사식(司飾)을 두었다(『태조실록』 6년 3월 15일).
이후 1405년(태종 5) 정월에 개정된 여관에서 상궁의 존재가 보이지 않다가(『태종실록』 5년 1월 15일), 1428년 3월, 상의, 상복, 상식, 상침, 상공, 궁정과 함께 정5품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에 상궁 위로는 정1품 빈과 귀인, 정2품 소의와 숙의, 정3품 소용과 숙용, 정4품 소원과 숙원이 있고, 아래로는 정6품 사기, 사빈(司賓), 사의(司衣), 사선(司膳), 사설(司設), 사제(司製)와 정7품 전언, 전찬(典贊), 전식(典飾), 전약(典藥), 전등(典燈), 전채(典綵), 전공(典正) 등이 있었다. 그리고 정5품의 정원은 각 1명씩 모두 7명이다(『세종실록』 10년 3월 8일).
그러나 『경국대전』 「이전」 ‘내명부’조에서 상궁은 상의와 함께 정5품이 되고 종5품으로 개정된 상복·상식, 정6품으로 개정된 상침·상공과는 차별화되었다. 따라서 상궁의 지위는 궁관의 으뜸으로 높은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때 내명부 직급의 정원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 규정은 이후 편찬된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등 법전에 변함없이 그대로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김용숙, 『조선조궁중풍속연구』, 일지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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