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죽석(錢竹石)"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10일 (일) 00:23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전죽석 |
한글표제 | 전죽석 |
한자표제 | 錢竹石 |
관련어 | 망주석(望柱石), 석망주(石望柱) |
분야 | 문화/예술/건축 |
유형 | 물품·도구 |
시대 | 조선시대 |
집필자 | 신지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전죽석(錢竹石)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년 1월 3일, 『세종실록』 7년 10월 16일 |
망주석(望柱石)의 상부 기둥.
내용
왕릉을 조성할 때 능 양쪽에 두 개의 석주를 세우는데 이를 망주석이라 하며, 망주석의 상부 팔각기둥 부분을 전죽석(錢竹石)이라 한다. 1420년(세종 2) 1월 기사를 보면 순효대왕 묘실 제도와 규모를 규정할 때 전죽석의 구성과 규모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1425년(세종 7) 10월 기사에는 원래 전죽석이라 불리던 것을 중국의 국조 예제(禮制)에 따라 석망주(石望柱)라 고쳐 부르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전죽석은 석망주의 옛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용례
錢竹石二 (以一尺爲圓頭 次以頭下一尺五寸 上刻仰蓮 下刻雲彩 次以四尺一寸作八面 其圓徑一尺一寸) 高各六尺四寸(『세종실록』 2년 1월 3일)
禮曹啓 事林廣記云 國朝禮制 墓制石望柱二 我朝諸陵制度儀軌 稱錢竹石 是因襲俗稱未便 乞依朝廷之制 諸陵儀軌內錢竹石 皆以望柱石追改 從之(『세종실록』 7년 10월 16일)
참고문헌
- 김왕직, 『알기 쉬운 한국건축용어사전』, 동녘, 2007.
- 장기인, 『한국건축사전』, 보성각, 199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