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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3:14 기준 최신판



역에 소속되어 일하는 급주노비에게 보수로 지급한 전지.

개설

긴급한 전령(傳令)·전신(傳信)을 담당하는 급주노비(急走奴婢)에게는 3명을 하나의 호(戶)로 편제하여 1결의 구분전(口分田)을 지급하였다(『세종실록』 7년 2월 25일). 그러다가 『경국대전』에서는 각자수세전(各自收稅田) 50복(卜)을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각자수세전은 민전(民田)이지만, 전세(田稅)를 관청에 납입하지 않고 사역(使役)의 대가로 스스로 수취하는 전지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초기 역(驛)에는 역리(驛吏) 외에 일수양반(日守兩班)·전운노비(轉運奴婢)·급주노비·관부(館夫)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급주노비는 긴급한 전령이나 전신을 담당하는 역졸(驛卒)이었다.

내용

급주노비는 마부(馬夫)인 전운노비와 함께 역의 잡다한 일에 종사하였다. 급주노비는 전운노비와 마찬가지로 인적 사항[根脚]]과 이름, 출산한 자식[生産]을 문서[文簿]에 기재하여 병조·감영(監營)·소재지의 고을·소속된 역에 각각 보관해 두었다. 이는 이들이 도망갈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급주노비에게는 3명을 하나의 호로 편제하여 1결의 구분전과 50복의 소경전(所耕田)을 지급하였다. 구분전은 민전에 설정되어 직접 수세권(收稅權)을 행사하였던 데에 비하여 소경전은 소유권을 행사하였던 전지(田地)였다.

변천

『경국대전』에서는 각자수세전(各自收稅田) 50복을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각자수세전은 민전이지만, 전세를 관청에 납입하지 않고 사역의 대가로 스스로 수취하는 전지를 의미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김태영, 『조선 전기 토지 제도사 연구: 과전법 체제』, 지식산업사, 1983.
  • 변태섭박사화갑기념 사학논총간행위원회 편, 『사학논총: 변태섭박사화갑기념』, 삼영사, 1985.
  • 이장우, 『조선 초기 전세 제도와 국가 재정』, 일조각, 1998.
  • 조병로, 『한국 근세 역제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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