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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6 기준 최신판



음력 6월 토왕일(土旺日)에 종묘의 뜰에서 중류(中霤)에게 제사하던 의례.

개설

중류는 실내의 거처를 주관하는 신으로, 칠사(七祀)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칠사는 인간의 여러 생활을 사찰하고 처벌하는 일곱 신을 위한 제사로, 사명(司命), 호(戶), 조(竈), 중류, 공려(公厲), 국문(國門), 국행(國行)에 대한 제사를 말한다. 종묘의 정전(正殿) 오른쪽에 위치한 칠사당(七祀堂)에 신위가 모셔져 있었으며, 제사의 규모는 소사(小祀)였다. 그 가운데 중류는 종묘서(宗廟署)의 종5품 령(令)이 잔을 올리는 헌관(獻官)이 되어 음력 6월의 오행 중 토의 기운이 왕성한 날인 토왕일(土旺日)에 제사하였고, 나머지 신은 종묘에서 사시제(四時祭)를 지낼 때 계절에 따라 나누어 제사를 지냈다. 납향(臘享)을 올릴 때는 칠사에 두루 제사하였다.

연원 및 변천

『예기(禮記)』「제법(祭法)」에, 천자는 여러 성(姓)을 위하여 칠사를 세우고, 제후는 나라를 위하여 오사(五祀)를 세운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천자는 칠사를, 왕은 오사를 지낸다는 의미이지만, 역사적 사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경우 은(殷)나라를 비롯해 한(漢)나라와 명나라의 천자는 오사를 거행하였고, 당나라와 송나라, 원나라의 천자는 칠사를 지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칠사가 등장하는데, 1048년(고려 문종 2)에 중류에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전례(典禮) 가운데 많은 부분에 제후국의 예를 준용하였지만, 이 경우에는 오사가 아니라 칠사를 행하고 이를 국가 오례 중 길례(吉禮)의 소사로 정하였다.

절차 및 내용

의식은 의례를 거행하기 전의 준비 과정과 당일의 의례 절차로 나뉜다. 준비 과정은 재계(齋戒)와 진설(陳設) 등이고, 당일의 의례는 사배례(四拜禮), 삼상향(三上香), 헌작(獻爵), 음복(飮福), 철변두(徹籩豆)의 순서로 진행된다.

재계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는 일을 말하는데, 예조(禮曹)의 요청에 따라 3일 동안 행한다. 2일 동안은 산재(散齋)라 하여 평소처럼 일하면서 음식과 행동을 삼가고, 하루 동안은 치재(致齋)라 하여 오직 제사와 관련된 일만 행한다. 진설은 제사 전날에 제사 지낼 장소를 청소하고, 제사에 참석할 사람들의 자리 및 의례를 행할 자리를 정하고 신위를 놓아두는 신좌(神座)를 설치하는 일을 말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제중류의).

제사 준비가 끝나고 당일이 되면 축시(丑時) 5각(刻) 전에 신위를 설치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과 헌관은 축시 1각 전에 정해진 자리로 나아간다. 헌관이 자리에서 4번 절하면 참석자들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4번 절하며 신을 맞이하는데, 이를 사배례라고 한다.

절을 마친 헌관은 신위 앞에 나아가 향을 3번 올리는데, 이를 삼상향이라 부른다. 그런 다음 신위 앞에 술잔을 올리는 헌작을 행한다.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한 술을 복주(福酒)라고 하는데, 헌관이 복주를 받아 마시는 절차가 음복이다.

음복을 마친 뒤에는 모신 신을 돌려보낸다는 의미에서 철변두를 행한다. 철변두는 제기인 ‘변(籩)’과 ‘두(豆)’를 거둔다는 뜻이지만, 실제 의례에서는 변과 두를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변과 두를 조금씩 움직인 뒤 헌관이 4번 절하고 나가면, 나머지 참석자들도 4번 절하고 퇴장한다. 모두 물러가면 전사관(典祀官)이 신위와 제사에 올렸던 음식을 거둔다. 대축(大祝)이 축판을 구덩이에 묻는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예기(禮記)』
  • 권용란, 「조선시대 칠사에 관한 소고」, 『종교와 문화』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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