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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6 기준 최신판



국상의 절차에서 승하한 사실 혹은 사위(嗣位)하는 뜻을 사(社)와 묘(廟)에 고하는 의절.

개설

국상이 났을 때 대신(大臣)을 보내 사직(社稷)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 등에 왕, 왕비, 왕대비 등의 승하 사실을 알렸다. 대개 국상의 제3일에 행한다. 세종대에 있었던 고문(告文)은 사단(社壇)과 직단(稷檀)에 각 1개씩, 영녕전에 1개, 종묘에 1개였다. 고문은 흉사 외에 경사 때에도 작성하여 알렸다.

연원 및 변천

세종대에는 국상의 사실을 고하는 곳이 종묘와 사직, 영녕전 등이었으나 효종대에는 인조의 첫 번째 비 인열왕후(仁烈王后)의 혼전(魂殿)인 숙녕전(肅寧殿)에도 그 사실을 고하였다(『효종실록』 즉위년 5월 14일). 숙종대에는 빈궁(嬪宮)의 상사(喪事)에 종묘, 영녕전, 영소전(永昭殿), 경녕전(敬寧殿)의 고문(告文)을 설행한 바 있으며(『숙종실록』 44년 2월 7일) 영조대에는 왕세손이 사위하는 뜻을 사직, 종묘, 영녕전 외에 저경궁(儲慶宮), 육상궁(毓祥宮), 휘령전(徽寧殿)에도 고하였다(『영조실록』 52년 3월 6일).

절차 및 내용

국장(國葬)에서 제3일에 대신을 보내 사직·영녕전·종묘에 고한다. 사묘(社廟)에 고하는 의절은 조선조 내내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고하는 의절에는 전(奠)이 없다. 사단과 직단에는 각각 1개씩의 고문이 있고, 영녕전에는 1개, 종묘에도 1개의 고문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춘관통고(春官通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