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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1:50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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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석담일기 |
한글표제 | 석담일기 |
한자표제 | 石潭日記 |
상위어 | 율곡전서(栗谷全書), 이이(李珥), 일기(日記) |
동의어 | 석담야사(石潭野史), 율곡선생석담일기(栗谷先生石潭日記) |
분야 | 정치/정치운영/통치행위 |
유형 | 문헌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근호 |
저편자 | 이이(李珥) |
간행년일 | 1581년(선조 14) |
사용활자 | 활자본, 필사본 |
표제 | 경연일기(經筵日記), 석담야사(石潭野史), 석담일기(石潭日記), 율곡선생석담일기(栗谷先生石潭日記) |
소장처 |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춘천 남양홍씨가, 강릉 영일정씨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석담일기(石潭日記) |
1565년(명종 20)부터 1581년(선조 14)까지 이이(李珥)가 조정에서 견문한 내용과 경연에서 진강한 내용을 기록한 일기.
개설
『석담일기』는 이이가 관직 생활 중에 보고 들은 것과 경연에서 강론한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한 일기이다. 『석담일기』의 활자본은 이이의 문집인 『율곡전서』에 수록되어 전하고, 필사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 그리고 개인이 소장하여 전한다. 1565년부터 1581년까지를 기술하였고, 각종 제도의 문제점과 개혁 방안, 선조에게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시행을 강조한 내용을 비롯해 붕당의 분화 등의 사건을 기록하였다. 명종 말년부터 선조대 전반기 정치사와 경연의 운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이는 1564년 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뒤에 호조(戶曹) 좌랑을 비롯해 예조(禮曹) 좌랑, 이조(吏曹) 좌랑(佐郞),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홍문관 부제학, 승지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사망하기 3년 전인 1581년 그동안 관직 생활에서 보고 들은 당시의 상황과 경연에 참여해서 진강(進講)한 내용 등을 중심으로 『석담일기』를 편찬하였다. 『석담일기』는 이후 제자나 주위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어 유포되었다.
서지 사항
『석담일기』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활자본인 『율곡전서』 권28~권30에 「경연일기(經筵日記)」로 수록된 경우가 있고, 『경연일기』 혹은 『석담일기』, 『율곡선생석담일기』, 『석담야사(石潭野史)』 등의 이름으로 필사되어 유통되기도 하였다. 단행본의 형태로 전하는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의 기관, 춘천 남양홍씨 가문과 강릉 영일정씨 가문 등에 소장되어 전한다.
현재 전하는 필사본의 경우 소장처에 따라 책에 기록된 시기가 다르다. 춘천 남양홍씨가 소장본은 선조 즉위 이후부터가 기술되었고, 강릉 영일정씨가 소장본은 1573년(선조 6)까지만 필사되어 전한다. 규장각에 소장된 책은 1565년부터 1574년까지 기록된 것이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책은 5책으로 전한다. 『율곡전서』에 수록된 「석담일기」는 1565년부터 1581년까지의 기록이다.
구성/내용
『석담일기』는 날짜별로 기록한 일기이다.
활자본인 『율곡전서』의 권28~권30에 수록된 일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먼저 권28의 경우 1565년부터 1571년까지, 권29는 1572년부터 1576년까지, 권30은 1577년부터 1581년까지를 기술하였다. 각 권별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경연에서 왕에게 왕도정치의 시행을 강조하거나 과거제나 재정, 국방 등 국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명종 말년경 윤원형(尹元衡)이나 이량(李樑)의 국정 천단(擅斷), 선조의 즉위 과정, 조식(曺植)이나 이준경(李浚慶)의 죽음을 기술하거나 이지함(李之菡)의 인물됨을 논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기 사림 세력이 분화되어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붕당이 형성되는 과정과 관련된 김효원(金孝元)과 심의겸(沈義謙)의 지방관 보임(補任), 김성일(金誠一)이 서인인 윤두수(尹斗壽)·윤근수(尹根壽)·윤현(尹晛)을 탄핵한 일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석담일기』는 시비를 단정하여 후세의 경계를 만들어 놓은 책으로, 국사(國史)와 야사(野史), 즉 개인 기록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석담일기』는 후대에 내려오면서 글자가 지워진 경우도 있었다[『숙종실록』 10년 8월 21일]. 시간이 경과하면서 『석담일기』는 당파를 불문하고 유통되었으며, 이긍익(李肯翊)은 『연려실기술』을 만들 때 주요 참고 서적의 하나로 활용하였다.
『석담일기』는 명종 말년부터 선조대 전반 국정의 운영과 붕당의 분화 문제, 나아가 경연의 운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송자대전(宋子大全)』
- 『율곡전서(栗谷全書)』
- 『순암집(順菴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신승운 역, 『율곡전서』,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http://db.itkc.or.kr/.
- 고민정, 「이이의 『석담일기』에 대한 서지학적 검토」, 『전북사학』32, 2008.
- 유성선, 「「석담야사·일기」에서 「경연일기」까지 간행 과정의 사상적 추이 연구」, 『한문고전연구』22,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