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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2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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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천하도 |
한글표제 | 천하도 |
한자표제 | 天下圖 |
대역어 |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 |
관련어 | 대명천하도(大明天下圖), 원형천하도(圓形天下圖) |
분야 | 문화/예술/미술 |
유형 | 개념용어 |
시대 | 조선시대 |
왕대 | 조선시대 |
집필자 | 정은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천하도(天下圖)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예종실록』 1년 6월 21일, 『성종실록』 13년 2월 13일, 『중종실록』 6년 8월 12일, 『중종실록』 31년 5월 10일, 『중종실록』 33년 11월 25일 |
조선시대 명나라와 동아시아의 조공국을 중심으로 중화적 세계관을 반영하여 제작된 지도.
개설
조선시대에 제작된 천하도(天下圖)는 일반적으로 명나라와 그 조공국을 중심으로 제작된 지도를 말하며,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로 불리기도 하였다. 천하도의 모본(模本)은 「대명천하도(大明天下圖)」와 같이 명에서 유입된 지도로 조선을 비롯한 일본국, 유구국(琉球國: 현 일본 오키나와) 등 주변국의 지리 정보를 보충하여 조선 전반기에 주로 제작되었다. 이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조선에서 중국『산해경(山海經)』에 근거한 지리인식을 바탕으로 제작한 조선의 ‘원형천하도(圓形天下圖)’와는 구분된다.
내용 및 특징
조선에서 제작된 천하도 중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 것은 1402년에 제작된 권근의 발문이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이다. 이 지도는 원나라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류코쿠대학교[龍谷大學校] 소장본과 이를 모사한 나가사키 혼코지[本光寺] 소장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등장하는 아라비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상은 주변 지역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려 했던 원나라의 개방적 대외관(對外觀)을 반영한 것이다.
천하도는 조선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는데, 1469년(예종 1)에 천하도가 제작되자 예종이 명나라를 사행한 경험이 있는 여러 대신들에게 내보이며, 지도를 보고 명나라 형세(形勢)를 자세히 살피도록 하였다(『예종실록』 1년 6월 21일). 또한 1482년(성종 13)에 양성지(梁誠之)가 올린 상소 내용 중에 지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지도는 관부(官府)에서 보관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족자로 제작한 대명천하도(大明天下圖)가 당시 조선에 유입되었음을 밝혔다(『성종실록』 13년 2월 13일).
이후 16~17세기를 거치는 동안 중화사상(中華思想)에 근거해 명나라 만리장성을 중심으로 중국과 오랑캐를 구분하여 제작된 중국식 천하여지도가 유행하였다. 당시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천하도 유입과 관련한 『조선왕조실록』 기사는 다음과 같다. 1511년(중종 6)에 홍문관에서 「천하여지도」를 중종에게 올렸다(『중종실록』 6년 8월 12일).
중종대에는 천하여지도 유입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였는데, 주로 명나라에 파견한 조선 사절단을 통해 구득하였다. 조선 사신들이 명나라 예부의 제독주사(題督主事)장오(張鏊)가 한 폭의 종이에 인쇄된 목판본 지도를 관청에 걸어둔 것을 목격했으나 명나라에서 지도의 조선 반출을 금지하였기에 감히 모사해 오지 못하였던 일이 있었다. 이에 중종은 1536년 성절사(聖節使)에게 명나라 조정에서 금하는 물건일지라도 다방면으로 구하여 사가지고 올 것을 특별히 명하기도 하였다(『중종실록』 31년 5월 10일).
1537년(중종 32)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사신 공용경이 귀국 후에 중국을 왕래하던 조선 사절을 통해 천하도를 중종에게 보내주었는데, 중국의 천하도는 인적 관계를 통해 유입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중종실록』 33년 11월 25일).
명나라 양자기(楊子器)의 발문이 있는 「여지도(輿地圖)」를 바탕으로 제작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混一歷代國都疆理之圖)」는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달리 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와 유럽 등을 그리지 않고, 중국과 조선을 중심으로 제작된 점에서 중국의 직방세계(職方世界)를 중심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직방세계란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오랑캐가 아닌 문명인들이 사는 세계를 의미한다. 조선의 각 도별 구분이 뚜렷해지고, 백두산의 지명과 산 모양이 선명해진 것과 달리, 일본과 유구국은 원형으로만 소략하게 표현되었다. 원대의 광대한 세계관과 달리 16세기 중화적 세계관을 반영한 결과로 추정할 수 있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여지도」는 1594년 명나라 왕반(王泮)의 지문(識文)이 있는 목판본 지도를 17세기 초 조선의 도화서 화원이 비단 바탕에 본떠 그린 뒤 채색을 입혀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을 뿐 아니라 한중일 삼국의 지리 정보를 현실적으로 반영하여 독창적 지도를 완성했다. 지도는 명나라 지형을 정방형(正方形)으로 그린 전통에 따라 제작되었지만, 원도에 비해 조선과 일본의 지형 윤곽과 백두산을 비롯하여 중국 서북부 산악의 고저 표현이 정교해지고, 지명이 보다 상세하며 지역에 따라 지명의 색깔을 달리 구분하였다. 또한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는 생략되고, 동아시아 한중일 지형의 윤곽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사료적 가치
현존하는 관련 지도를 통해 중국을 바탕으로 제작된 중국식 천하여지도가 조선에 유입되어 재생산되는 과정과 중국은 물론, 일본과 유구국 등에 대한 조선의 주변국 인식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 오상학, 『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 인식』, 창비, 2011.
- 오상학, 「조선후기 원형천하도의 특성과 세계관」, 『국토지리학회지』 35-3, 국토지리학회, 2001.
- 劉宗迪, 「古代朝鮮的世界觀與 『山海經』-以朝鮮王朝時期 『天下圖』爲中心-」, 『민족문화논총』 46,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 이찬, 「한국의 고지도」,『한국의 고지도』, 범우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