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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9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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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작부 |
한글표제 | 작부 |
한자표제 | 作夫 |
동의어 | 팔결작부(八結作夫) |
관련어 | 호수(戶首) |
분야 | 경제/재정/역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후기 |
집필자 | 윤용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작부(作夫)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1년 11월 2일 |
전결세를 납부하기 위한 8결 단위의 납세 조직인 주비를 짓는 일.
개설
작부제는 대체로 8결의 전지(田地)를 하나의 부(夫) 곧 주비로 삼고 주비마다 1명의 호수(戶首)를 선정한 다음, 호수가 주비 구성원의 세곡을 모아 바치는 제도였다. 8결 단위의 주비는, 고려의 작정제(作丁制)나 조선전기의 역민식(役民式)에 나타나는 ‘전팔결출일부(田八結出一夫)’의 규정을 계승한 것이었다.
내용 및 특징
작부제(作夫制)는 조선후기에 향촌의 전결세(田結稅)를 수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조직으로 『속대전』에 규정되어 있으나 이미 그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이러한 작부제는 조선전기의 역민식에서 8결을 단위로 1부를 내는 방식이나, 고려의 작정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조선시대 내내 전결세의 징수와 운송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개별 농민이 각자 자신이 납부해야 할 전결세를 관아나 조창(漕倉)까지 운송하는 노역을 담당하는 일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따라서 하나의 자치적 조직을 만들어 그 대표자가 구성원의 세곡을 취합하여 운송하게 한 것이 작부제의 주요 내용이었다. 작부는 해마다 만들어졌다가 해체되는 잠정적인 조직이며, 대표자인 호수 역시 돌아가면서 맡는 임시직에 해당하였다.
향촌에서의 수세 과정은 크게 나누어 행심(行審), 표재(俵災), 작부의 3단계로 이루어졌다. 행심이란 그해의 작황을 살피고, 면세지인 재상전(災傷田)과 출세결(出稅結)인 신기전(新起田), 환기전(還起田)을 조사하는 과정이었다. 이때 기준이 된 것이 행심책(行審冊)으로, 각 지방별로 대개 3년을 주기로 만들어져서 사실상 양안(量案)의 역할을 대신하였다(『성종실록』 1년 11월 2일).
표재란 자연재해를 입은 토지에 대한 면세 조치로서, 재결(災結)의 지급을 말하였다. 수령은 감영에서 지급된 재결의 범위 내에서 재해 입은 토지에 재결 판정을 할 수 있었다. 한편 소유자와 소유지가 일치하지 않거나 소유지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옮겨 오거나 옮겨 가는 조정 절차[移來移去]를 통하여 징수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이어서 8결 주비를 만드는 작부의 조치가 진행되었다. 큰 고을일 경우 8결 주비가 여러 개 생길 수도 있었으며, 작은 마을일 경우 8결 미만의 단일 주비가 결성되었다. 이렇게 주비가 만들어지면, 각 주비마다 1명의 호수(戶首)를 임명하였다.
전세미는 당시 중앙의 현물 재정 운영 방식이 유지되는 한, 현물 자체로 거두어들여 운송되었다. 따라서 전세미 수납의 요역은 현물 조세 징수의 수취 방식이 존재하는 한, 납세자의 노동력을 징발하여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세미 수납은 가장 늦게까지 노동력을 직접 징발하는 요역 종목으로 남았다.
19세기 들어 각 군현에서 전세의 대전(代錢) 수납이 성행하게 될 무렵, 이른바 관도결(官都結)이라는 새로운 관행이 유행하였다. 전세곡을 화폐로 대신 납부하는 만큼 작부제에서 호수가 수납하는 체계, 곧 호수에게 전세 수송의 요역을 부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자연히 호수에게 돌아갔던 역가(役價) 명목의 차익은 관부로 귀속되었다. 1894년의 갑오개혁에 이르러서 조세의 금납화가 공식적으로 실현되었을 때 작부제 또한 사실상 소멸되었다.
변천
19세기 말부터 마을의 크기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1명씩 호수를 선정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이후 전세를 납부하는 주비가 마을 단위로 고정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화폐경제가 발달하여 전결세를 돈으로 납부[錢納化]하면서 세곡을 수납하는 요역은 소멸해 나갔다.
참고문헌
- 김용섭교수정년기념 한국사학논총간행위원회 편, 『한국 근현대의 민족문제와 신국가건설』, 지식산업사, 1997.
- 윤용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 요역제 부역노동의 해체, 모립제 고용노동의 발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 이재룡박사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간행위원회 편, 『이재룡박사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 한울, 1990.
- 안병욱, 「19세기 부세의 도결화와 봉건적 수취체제의 해체」, 『국사관논총』 제7집, 1989.
- 이영훈, 「조선후기 팔결작부제에 대한 연구」, 『한국사연구』 29, 1980.
- 정선남, 「18·19세기 전결세의 수취제도와 그 운영」, 『한국사론』 22,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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