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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48 기준 최신판



생사로 짠 얇은 견직물 또는 증(繒)·백(帛)·견(絹)과 같은 견직물의 통칭.

내용

관복과 예단으로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고급 견직물이다. 1421년(세종 3)에는 초견이 비단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541년(중종 36)에는 혼인 때 사치를 금단하는 규정을 내리면서 사라능단과 초견, 명주 등을 예물로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잘 준수되지 않았던지 인조대에도 여전히 폐백용으로 사용되었다.

용례

可令聖節進賀使 貿朝服所用綃絹及喪服一件來(『태종실록』 16년 1월 13일).

참고문헌

  • 민길자, 『전통옷감』, 대원사, 1997.
  • 조효숙, 「김여온 묘의 유물을 통해 본 17세기의 직물문화」, 『17세기 무관옷 이야기』, 안동대학교 박물관,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