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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장군 척계광(1528∼1587)이 1560년(嘉靖 39) 절강현(浙江縣) 참장(參將)으로 있을 때 왜구(倭寇)를 소탕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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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이 편찬한 병서로서 16세기 중반 중국의 남방 지역에서 활동하던 왜구의 전술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 위주의 책.
  
 
=='''개설'''==
 
=='''개설'''==
  
『기효신서(紀效新書)』는 중국 명나라 장군 척계광(1528~1587)이 1560년(嘉靖 39)에 절강현(浙江縣) 참장(參將)으로 있을 때 왜구(倭寇)를 소탕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이다. 권1 속오편(束伍編)으로부터 권18 치수병편(治水兵編)에 이르기까지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왜구는 주로 해안선을 따라, 습지가 많은 중국의 절강 지방 등을 노략하였다. 이를 소탕하는 데에는 종래 북방 유목민족을 소탕하기 위하여, 편제된 군제(軍制)와 무기 및 전술이 적합하지 않았다. 왜구의 기습적인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소부대의 운용과 접근전에 적합한 전술을 고안한 내용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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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10대 병서 중 하나로 꼽히는 『기효신서』는 16세기 중반 명나라의 유명한 장수 척계광이 편찬한 병서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이 시기 중국 남방의 절강성과 복건성 등에서 약탈하던 일본[[왜구(倭寇)]]의 전술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체제의 전술을 담고 있다. 임진왜란 중 조선에 원병으로 참전한 명나라 군에 의해 평양성 전투 당시 조선에 처음으로 전해진 이후 조선의 군사제도 개편과 전술 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편찬/발간 경위'''==
 
=='''편찬/발간 경위'''==
  
중국 명나라 장군 척계광(1528∼1587)은 1555년부터 1566년까지 12년간에 걸쳐, 절강(浙江), 복건(福建), 광동(廣東) 등지에서 백여 회 이상의 왜구와의 전쟁을 연승으로 이끌었으며, 철저한 왜구 소탕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궁시(弓矢), 대봉(大棒), 선창(*槍), 쾌창(快*) 등의 무기를 전면 개량하였으며, 남방의 왜구를 방어할 때에 사용했던 등패(藤牌), 낭선(狼*), 장창(長槍) 등을 좀 더 새롭게 개선하였다. 이후 척계광은 과거에 저술한 18권의 『기효신서』와 『연병실기(練兵實紀)』를 기초로 하여, 1584년에 14권의 『기효신서』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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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중국의 남방인 절강 및 복건성 지역에 왜구가 크게 성하였음에도 기존의 명나라 무기체계와 전술로는 이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에 척계광은 원앙진(鴛鴦陣)이라는 새로운 진형과 군사 편제, 그리고 등패, 낭선, 당파, 장창 등 새로운 근접전 무기 및 가벼운 화기를 채택한 전술을 개발하게 된다. 이른바 절강병법(浙江兵法)이 그것으로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기효신서』이다.
  
『척소보연보기편(戚少保年譜耆編)』에 기록된 『기효신서』의 의미를 보면,‘ 기효(紀效)’는 명확히 효과 있는 방법을 기록한 것이라는 뜻이며, ‘신서(新書)’는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은, 새로운 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군사기술을 체계화한 중국의 ‘10대 병서’ 가운데 하나로 그 판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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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효신서』는 1560년에 처음 14권 체재로 간행되었다. 이는 후대에 많이 통용되었던 18권으로 이루어진 『기효신서』에서 포성(布城), 정기(旌旗), 수초(守哨), 수병(水兵) 등의 네 편이 생략된 것으로 세부 내용도 상당히 소략한 것이었다. 이는 척계광이 휘하 군사를 교육하기 위한 내부 교범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현재 널리 보급되어 사고전서에까지 수록된 18권본 『기효신서』는 1566년(명 가정 45)에 간행된 것으로 왕세정(王世貞)이 가지고 있던 필사본을 근간으로 하여 서문을 붙여 만들었으며 ‘왕세정본(王世貞本)’이라고도 한다. ‘왕세정본’은 이후 간행된 『기효신서』 여러 판본의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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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효신서』는 이 판본 이외에 또 하나의 주요 판본이 있다. 일명 ‘이승훈본(李承勛本)’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척계광 사후인 1588년(명 만력 16)에 14권으로 간행된 것이다. 척계광은 남방에서의 왜구 토벌에 성공한 이후 또 다른 위협이었던 북방족에 대처하기 위해 북방으로 부임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은 『연병실기(練兵實紀)』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연병실기』는 북방 기병에 대항하고자 전차와 보병, 기병을 동시에 활용하는 전법을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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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계광은 1583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이미 간행된 『기효신서』의 내용을 수정하는 데 진력하여 1584년 ‘만력십이년판(萬曆十二年版)’ 『기효신서』를 편찬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후 이승훈이 14권 체재의 이른바 ‘이승훈본’ 『기효신서』를 간행하였다. ‘이승훈본’ 『기효신서』는 다른 판본과 달리 체제상 기존의 18권에서 14권으로 바뀌었고 각 권 목차와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다. ‘이승훈본’은 그 이전의 판본보다 체재와 내용 면에서 보다 짜임새가 갖추어지고 풍부해졌다. 이러한 두 판본 외에도 몇 가지 판본이 전해지고 있지만 체재상으로 볼 때 두 판본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지 사항'''==
 
=='''서지 사항'''==
  
1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4cm 가로 15.2 cm이며,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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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선에서 간행되어 국내에 소장된 주요 판본은 대부분 18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활자본으로 간행 연대는 상세하지 않다. 다만 17세기 중반인 1664년(현종 5) 8월 병조 판서인 김좌명(金左明)이 『기효신서』를 재간행하면서 여러 판본의 『기효신서』를 대조하여 내용을 정리하고 아울러 기존의 『기효신서』에 덧붙여 별집(別集)을 포함하였다. 그 별집의 내용은 신증팔진도식(新增八陣圖式) 및 『연병실기』의 내용 중에서 거영(車營), 기영(騎營) 및 등단구수편(登壇口授編)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ra_10508025_003 『현종실록』 5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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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및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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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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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 속오편(束伍篇)은 군사의 선발과 편성에 관련된 사항으로 군대를 선발하고 대오를 편성할 때 영(營)-[[초(哨)]]-기(旗)-대(隊)를 차례대로 선발하게 하고 선발과 훈련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병사나 대장 등이 휴대하는 자신의 소속과 신체조건 등을 기록한 요패(腰牌)의 양식과 각 단위 부대에서 소속을 나타내는 요기(腰旗)의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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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 이목편(耳目篇)은 병사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신호 장비, 예를 들면 [[호포(號砲)]], 호적(胡笛), 나팔(喇叭) 등과 이것으로 신호하는 방법, 그리고 병사들의 동작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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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 수족편(手足篇)은 당시의 대표적인 원거리 무기들, 즉 장병(長兵)에 대해서 그 규격과 내용 그리고 부품 등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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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4 수족편은 척계광이 당시 고안하거나 사용하고 있던 여러 단병기(短兵), 예를 들면 [[등패(藤牌)]], 요도(腰刀), 장도(長刀), 당파(鏜鈀), [[낭선(狼筅)]], [[장창(長槍)]] 등의 제원과 사용법(習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무기를 능숙하게 익히기 위해 기본적으로 곤(棍)의 사용법을 숙달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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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5 수족편은 대봉(大棒)으로 하는 훈련방법과 발동작을 설명하고 있고, 14동작의 상호 대련의 자세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권법(拳法)]]에서는 그 필요성과 당시까지의 권법의 종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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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6 비교편(比較篇)에서는 여러 가지 병기 사용법의 숙달 여부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총, 불량기, 화전, 원패, 장창, 대봉 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측정한 결과는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까지 모두 9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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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7 영진편(營陣篇)은 진법에 대한 내용으로 먼저 영진을 설치하여 적이 접근하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사전에 약정된 신호에 맞추어 조총, 궁시 등을 일제히 발사하고 전층과 후층이 나아가서 싸우고 철수하는 훈련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방영(方營)을 설치하는 요령과 병력 배치요령, 그리고 방영을 설치 후 인원 통제, 진영의 야간 경비요령[夜營], 진영을 은밀히 옮기는 요령 등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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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8 행영편(行營篇)은 부대가 출동하는 절차와 행군 시의 진영 배치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행군 중 필요한 척후병(塘報軍)의 규모와 그 운용에 대한 사항, 행군 시 급히 진영을 설치하는 요령 등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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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9 야영편(野營篇)은 야영하는 방법을 설명한 편으로 지형을 살펴 적절한 야영지를 설정하는 법을 언급하고 있다.  
  
=='''구성/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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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0 실전편(實戰篇)은 실제 전투를 하면서 야기되는 갖가지 상황에 대한 조치사항 등을 언급하고 있다. 즉 사격통제, 전투하는 요령, 연좌제에 의한 엄격한 부대장악, 노획물 처리, 도망자에 대한 처벌, 부상병 구호 등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권1 속오편(束伍編)으로부터 권18 치수병편(治水兵編)에 이르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왜구 토벌 과정에 필요한 군사 훈련법과 방어책, 치군사상(治軍思想)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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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1 담기편(膽氣篇)은 병사들이 강인한 정신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여야 할 34개 조항을 언급하고 있다. 척계광은 진정한 기()는 마음[心]에서 나오는 것으로 마음을 단련하면 기는 저절로 장성해진다고 하여 마음의 단련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척계광은 등주인(登州人)의 명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무예를 수련하였다. 1544년(嘉靖 23) 16세 때 부친의 관직을 계승하여, 등주위첨사(登州衛僉事)가 되었다. 1552년 일본 제후의 지지를 얻은 상인, 무사와 선인들이 명 조정에 불만이 있는 명나라 인들을 이용하여, 명의 동남 연해 지역에 대규모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명은 이러한 왜구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서, 척계광을 서도지첨사(署都指僉事)로 임명하여, 산동지역의 왜구 방비를 맡도록 하였다. 1555년에 절강도사첨서(浙江都司僉書)에 전임 되었으며, 그 다음 해에는 영소대참장(寧紹台參將)으로서 영파(寧波), 소흥(紹興), 태주(台州) 등의 광범위한 지역의 왜구 소탕의 중임을 맡았다. 초기의 왜구 소탕은 명군의 장군들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 저조로 인해서 순조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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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2 주사편(舟師篇)은 수군의 편성과 훈련, 수상전에 관련된 조항을 언급하고 있다. 선단의 편성은 10척 이하 5척 이상을 1종()이라 하고 [[초관(哨官)]]이 이를 통솔하게 하고 2초를 1사로 3사를 1부라 하여 분총(分總)과 주장(主將)이 각각 통솔하게 하였다. 타공(舵工), 정수(碇手) 등 수군의 각 병사들의 책임 분담 및 전함에 필요한 각종 깃발을 설명하고 있다.
  
왜구는 주로 해안선을 따라 습지가 많은 중국의 절강 지방 등을 노략하였다. 척계광은 여러 번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였지만, 당시의 군대는 격렬한 싸움을 견뎌낼 능력이 없었고, 또한 잠항(岑港)에서의 전역(戰役) 중 장시간에 걸친 왜구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해임되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직접 신병을 모집하여 훈련시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559년에 그는 광부와 농민 3천여 명을 모집하여 장단 병기를 교대로 사용하는 전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또한 스스로 연구한 진법인 원앙진(鴛鴦陣)을 기본 전투의 대형으로 군대를 편성하여 공격과 방어의 양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군사의 전면적인 훈련을 실시하였다. 척계광은 훈련 과정 중에 군사 훈련의 조항을 정리한 것을 서적으로 편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14권의 『기효신서(紀效新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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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3 수초편(守哨篇)은 수성전에 필요한 각종 성의 규모와 다양한 시설물, 예를 들어 치(雉), [[현안(懸眼)]], 옹성(甕城), 와포(窩舖), 우마장(牛馬牆), 성하(城河) 등의 규격과 모양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성의 본체는 벽돌로 쌓는 것이 가장 좋고 그다음이 돌이고 세 번째는 흙이라고 언급한 점이다.
  
『기효신서』의 병법은 절강지방에서 나왔다고 하여, 절강병법(浙江兵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명확한 지휘편제와 연대책임을 강조하는 속오법(束伍法)을 채택하고, 조총(鳥銃)ㆍ등패(藤牌)ㆍ낭선(狼筅)ㆍ장창(長槍)ㆍ권법(拳法) 등 다양한 무기와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1월 평양성전투 후였다. 선조는 명나라의 이여송(李如松)의 군대가 『기효신서』의 전법으로 왜군을 격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입수하여 그 전법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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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4 연장편(鍊將篇)은 유능한 장수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정심술(正心術) 등 27가지 조항을 들고 있다. 이 편은 원래 『연병실기』 권9에 실려 있는 것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그 이후 『기효신서』의 속오법과 삼수기법(三手技法)에 따라, 중앙군으로는 훈련도감(訓鍊都監), 지방군으로는 속오군(束伍軍)이 설립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설립된 어영청(御營廳)ㆍ총융청(摠戎廳)ㆍ수어청(守禦廳)ㆍ금위영(禁衛營) 등 중앙군영들도 이에 따라 편제되었다. 조선 전기의 ‘졸(卒) → 오(伍) → 대(隊) → 여(旅), 통(統) → 부(部) →위()’로 이어지는 부대편제는 폐지되고, ‘대 →기(旗) → 초(哨) → 사(司) → 영()’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부대편제가 채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병법이 한국의 지형과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게 변용 응용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조총을 중시하면서 군대편제를 더욱 세분화ㆍ다양화하였다. 이렇게 발전시킨 것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등의 병서이다. 이 책의 부대편제 방식은 1894년까지 계속되어오다가, 갑오개혁으로 근대적인 군제가 도입되면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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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5 별집(別集) 진도편(陣圖篇)은 제갈량이 중국 고대의 병법서인 『악기경(握奇經)』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팔진과 이의 내용인 천복진, 지재진, 풍양진, 운수진, 비룡진(龍飛陣), 호익진(虎翼陣), 조상진(鳥翔陣), 사반진(蛇蟠陣)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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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6 별집 거영편(車營篇)은 북방족의 공격 시 전차를 이용하여 급편 방어진지를 편성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에 사용되는 전차의 제원과 적재하는 무기 및 탑승 군사의 수효를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적군이 접근할 경우 전차로서 거영을 설치하는 방법과 하나의 거영에 소요되는 장비와 인원을 규정하고 있다.
  
『기효신서』는 후대 인근국가 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 중국에서는 『무비지(武備志)』와 『삼재도회(三才圖會)』 등의 병서에 영향을 미쳤고, 조선에서는 『무예제보(武藝諸譜)』ㆍ『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ㆍ『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 등의 병서에 영향을 주었으며, 일본에서는 『무술조학(武術早學』ㆍ『군법병기(軍法兵記)』ㆍ『병법오의서(兵法奧義書)』 등 병서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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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7 별집 기영편(騎營篇)은 북방족 정벌 시의 기영(騎營)의 편성과 편제 장비를 규정하고 있다. 뒤에는 보급을 담당하는 치중거(輜重車)의 규격과 적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 편성하는 치중영(輜重營)의 규모와 편제 장비, 그리고 수송물량 등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조선에서는 현종(顯宗) 5년(1664)에 김좌명(金佐明)이 척계광의 ‘이승훈본’을 참고로 하여, 조선본 『기효신서』를 재간행 하였다. 책은 중국의 『기효신서』를 당시 조선의 상황과 실정에 맞추어 재구성한 서적으로 한국의 병법무예서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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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8 별집 등단구수편(登壇口授篇)은 척계광이 [[계주(薊州)]] 총병으로 있을 때 주변의 장수들을 모아 교육한 내용을 척계광의 오랜 부장이었던 서로부총관이초(李超), 동로부총관호수인(胡守仁)서수(書手) 20명을 동원하여 기록한 것을 편집한 것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나영일, 「기효신서, 무예제보, 무예도보통지 비교연구」, 『한국체육학회지』 36권 4호, 한국체육학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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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노영구, 「조선 증간본 《기효신서》의 체제와 내용: 현종 5년 재간행 《기효신서》의 병학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국방부 연구보고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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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노영구, 「선조대 기효신서의 보급과 진법 논의」, 국방부 연구보고서,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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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학지남(兵學指南)』     
*박귀순, 「일본의 『병법비전서』와 『기효신서』 『무비지』의 관련 연구」, 『한국체육사학회지』 제13호, 한국체육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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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병실기(練兵實紀)』     
*서치상ㆍ조형래, 「『기효신서』 도입 직후의 새로운 성제(城制) 모색」, 『대한건축학회지』 제24권 제1호ㆍ통권 제231호, 대한건축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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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계유고(歸溪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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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구, 「조선 증간본 기효신서의 체제와 내용」, 『군사』36, 국방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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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구, 「조선후기 병서와 전법의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관계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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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56 기준 최신판



명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이 편찬한 병서로서 16세기 중반 중국의 남방 지역에서 활동하던 왜구의 전술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 위주의 책.

개설

중국의 10대 병서 중 하나로 꼽히는 『기효신서』는 16세기 중반 명나라의 유명한 장수 척계광이 편찬한 병서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이 시기 중국 남방의 절강성과 복건성 등에서 약탈하던 일본왜구(倭寇)의 전술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체제의 전술을 담고 있다. 임진왜란 중 조선에 원병으로 참전한 명나라 군에 의해 평양성 전투 당시 조선에 처음으로 전해진 이후 조선의 군사제도 개편과 전술 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편찬/발간 경위

16세기 중반 중국의 남방인 절강 및 복건성 지역에 왜구가 크게 성하였음에도 기존의 명나라 무기체계와 전술로는 이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에 척계광은 원앙진(鴛鴦陣)이라는 새로운 진형과 군사 편제, 그리고 등패, 낭선, 당파, 장창 등 새로운 근접전 무기 및 가벼운 화기를 채택한 전술을 개발하게 된다. 이른바 절강병법(浙江兵法)이 그것으로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기효신서』이다.

『기효신서』는 1560년에 처음 14권 체재로 간행되었다. 이는 후대에 많이 통용되었던 18권으로 이루어진 『기효신서』에서 포성(布城), 정기(旌旗), 수초(守哨), 수병(水兵) 등의 네 편이 생략된 것으로 세부 내용도 상당히 소략한 것이었다. 이는 척계광이 휘하 군사를 교육하기 위한 내부 교범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현재 널리 보급되어 사고전서에까지 수록된 18권본 『기효신서』는 1566년(명 가정 45)에 간행된 것으로 왕세정(王世貞)이 가지고 있던 필사본을 근간으로 하여 서문을 붙여 만들었으며 ‘왕세정본(王世貞本)’이라고도 한다. ‘왕세정본’은 이후 간행된 『기효신서』 여러 판본의 바탕이 되었다.

『기효신서』는 이 판본 이외에 또 하나의 주요 판본이 있다. 일명 ‘이승훈본(李承勛本)’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척계광 사후인 1588년(명 만력 16)에 14권으로 간행된 것이다. 척계광은 남방에서의 왜구 토벌에 성공한 이후 또 다른 위협이었던 북방족에 대처하기 위해 북방으로 부임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은 『연병실기(練兵實紀)』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연병실기』는 북방 기병에 대항하고자 전차와 보병, 기병을 동시에 활용하는 전법을 채택하였다.

척계광은 1583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이미 간행된 『기효신서』의 내용을 수정하는 데 진력하여 1584년 ‘만력십이년판(萬曆十二年版)’ 『기효신서』를 편찬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후 이승훈이 14권 체재의 이른바 ‘이승훈본’ 『기효신서』를 간행하였다. ‘이승훈본’ 『기효신서』는 다른 판본과 달리 체제상 기존의 18권에서 14권으로 바뀌었고 각 권 목차와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다. ‘이승훈본’은 그 이전의 판본보다 체재와 내용 면에서 보다 짜임새가 갖추어지고 풍부해졌다. 이러한 두 판본 외에도 몇 가지 판본이 전해지고 있지만 체재상으로 볼 때 이 두 판본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지 사항

현재 조선에서 간행되어 국내에 소장된 주요 판본은 대부분 18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활자본으로 간행 연대는 상세하지 않다. 다만 17세기 중반인 1664년(현종 5) 8월 병조 판서인 김좌명(金左明)이 『기효신서』를 재간행하면서 여러 판본의 『기효신서』를 대조하여 내용을 정리하고 아울러 기존의 『기효신서』에 덧붙여 별집(別集)을 포함하였다. 그 별집의 내용은 신증팔진도식(新增八陣圖式) 및 『연병실기』의 내용 중에서 거영(車營), 기영(騎營) 및 등단구수편(登壇口授編)이었다(『현종실록』 5년 8월 25일).

구성 및 내용

각 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1 속오편(束伍篇)은 군사의 선발과 편성에 관련된 사항으로 군대를 선발하고 대오를 편성할 때 영(營)-초(哨)-기(旗)-대(隊)를 차례대로 선발하게 하고 선발과 훈련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병사나 대장 등이 휴대하는 자신의 소속과 신체조건 등을 기록한 요패(腰牌)의 양식과 각 단위 부대에서 소속을 나타내는 요기(腰旗)의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권2 이목편(耳目篇)은 병사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신호 장비, 예를 들면 호포(號砲), 호적(胡笛), 나팔(喇叭) 등과 이것으로 신호하는 방법, 그리고 병사들의 동작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권3 수족편(手足篇)은 당시의 대표적인 원거리 무기들, 즉 장병(長兵)에 대해서 그 규격과 내용 그리고 부품 등을 설명하고 있다.

권4 수족편은 척계광이 당시 고안하거나 사용하고 있던 여러 단병기(短兵), 예를 들면 등패(藤牌), 요도(腰刀), 장도(長刀), 당파(鏜鈀), 낭선(狼筅), 장창(長槍) 등의 제원과 사용법(習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무기를 능숙하게 익히기 위해 기본적으로 곤(棍)의 사용법을 숙달하도록 하고 있다.

권5 수족편은 대봉(大棒)으로 하는 훈련방법과 발동작을 설명하고 있고, 14동작의 상호 대련의 자세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권법(拳法)에서는 그 필요성과 당시까지의 권법의 종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권6 비교편(比較篇)에서는 여러 가지 병기 사용법의 숙달 여부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총, 불량기, 화전, 원패, 장창, 대봉 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측정한 결과는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까지 모두 9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도록 하였다.

권7 영진편(營陣篇)은 진법에 대한 내용으로 먼저 영진을 설치하여 적이 접근하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사전에 약정된 신호에 맞추어 조총, 궁시 등을 일제히 발사하고 전층과 후층이 나아가서 싸우고 철수하는 훈련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방영(方營)을 설치하는 요령과 병력 배치요령, 그리고 방영을 설치 후 인원 통제, 진영의 야간 경비요령[夜營], 진영을 은밀히 옮기는 요령 등을 언급하고 있다.

권8 행영편(行營篇)은 부대가 출동하는 절차와 행군 시의 진영 배치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행군 중 필요한 척후병(塘報軍)의 규모와 그 운용에 대한 사항, 행군 시 급히 진영을 설치하는 요령 등을 설명하고 있다.

권9 야영편(野營篇)은 야영하는 방법을 설명한 편으로 지형을 살펴 적절한 야영지를 설정하는 법을 언급하고 있다.

권10 실전편(實戰篇)은 실제 전투를 하면서 야기되는 갖가지 상황에 대한 조치사항 등을 언급하고 있다. 즉 사격통제, 전투하는 요령, 연좌제에 의한 엄격한 부대장악, 노획물 처리, 도망자에 대한 처벌, 부상병 구호 등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권11 담기편(膽氣篇)은 병사들이 강인한 정신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여야 할 34개 조항을 언급하고 있다. 척계광은 진정한 기(氣)는 마음[心]에서 나오는 것으로 마음을 단련하면 기는 저절로 장성해진다고 하여 마음의 단련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권12 주사편(舟師篇)은 수군의 편성과 훈련, 수상전에 관련된 조항을 언급하고 있다. 선단의 편성은 10척 이하 5척 이상을 1종(䑸)이라 하고 초관(哨官)이 이를 통솔하게 하고 2초를 1사로 3사를 1부라 하여 분총(分總)과 주장(主將)이 각각 통솔하게 하였다. 타공(舵工), 정수(碇手) 등 수군의 각 병사들의 책임 분담 및 전함에 필요한 각종 깃발을 설명하고 있다.

권13 수초편(守哨篇)은 수성전에 필요한 각종 성의 규모와 다양한 시설물, 예를 들어 치(雉), 현안(懸眼), 옹성(甕城), 와포(窩舖), 우마장(牛馬牆), 성하(城河) 등의 규격과 모양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성의 본체는 벽돌로 쌓는 것이 가장 좋고 그다음이 돌이고 세 번째는 흙이라고 언급한 점이다.

권14 연장편(鍊將篇)은 유능한 장수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정심술(正心術) 등 27가지 조항을 들고 있다. 이 편은 원래 『연병실기』 권9에 실려 있는 것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권15 별집(別集) 진도편(陣圖篇)은 제갈량이 중국 고대의 병법서인 『악기경(握奇經)』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팔진과 이의 내용인 천복진, 지재진, 풍양진, 운수진, 비룡진(龍飛陣), 호익진(虎翼陣), 조상진(鳥翔陣), 사반진(蛇蟠陣)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권16 별집 거영편(車營篇)은 북방족의 공격 시 전차를 이용하여 급편 방어진지를 편성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에 사용되는 전차의 제원과 적재하는 무기 및 탑승 군사의 수효를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적군이 접근할 경우 전차로서 거영을 설치하는 방법과 하나의 거영에 소요되는 장비와 인원을 규정하고 있다.

권17 별집 기영편(騎營篇)은 북방족 정벌 시의 기영(騎營)의 편성과 편제 장비를 규정하고 있다. 뒤에는 보급을 담당하는 치중거(輜重車)의 규격과 적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 편성하는 치중영(輜重營)의 규모와 편제 장비, 그리고 수송물량 등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권18 별집 등단구수편(登壇口授篇)은 척계광이 계주(薊州) 총병으로 있을 때 주변의 장수들을 모아 교육한 내용을 척계광의 오랜 부장이었던 서로부총관이초(李超), 동로부총관호수인(胡守仁)이 서수(書手) 20명을 동원하여 기록한 것을 편집한 것이다.

참고문헌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병학지남(兵學指南)』
  • 『연병실기(練兵實紀)』
  • 『귀계유고(歸溪遺稿)』
  • 노영구, 「조선 증간본 기효신서의 체제와 내용」, 『군사』36, 국방부, 1998.
  • 노영구, 「조선후기 병서와 전법의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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