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번갑(鏡幡甲)"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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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50 기준 최신판



고려와 조선시대 쇠 미늘[鐵札]과 쇠고리[鐵環]를 연결하여 만든 갑옷.

개설

『세종실록』「오례」 군례서례 병기 부분에 있는 경번갑 그림을 보면, 앞길 부분에 철찰(鐵札)을 세로로 길게 연결한 열(列)과 철환(鐵環)의 열이 교대로 배열되어 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세종실록』「오례」에 제시된 ‘갑(甲)’ 도면과 유사한데, 다만 깃을 따로 세워서 분령(盆領)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세종실록』 오례 군례 서례 병기 갑옷·투구].

깃과 여밈 부분에 선을 가늘게 두르고 5쌍의 근으로 여미는 방식도 동일하며, 수구와 도련에는 화문(花紋)의 직물을 덧대었고 쇄자갑처럼 여밈 사이로 뒷길 부분의 철환이나 철찰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같은 직물이나 피혁이 안쪽에도 연결되어 안감을 구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 정지(鄭地)가 입었던 경번갑은, 『세종실록』「오례」의 도식과 비교했을 때 철판과 철환의 배열 상태가 다소 차이는 있으나 특징과 원리는 동일하게 보인다.

주로 가슴과 등 부분에 철판을 대고 팔과 다리에는 철환을 배합하여 만든 경번갑은 터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러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사용되었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사각형 이외에 육각형·팔각형·타원형 철판을 사용하거나 팔다리 부분에도 작거나 좁고 긴 철판을 사용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연원 및 변천

경번갑은 삼국시대의 철갑옷보다 한결 간편한 갑옷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말기의 유물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고려말기 장군정지가 입었던 갑옷이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전기의 갑옷은 명의 영향을 받았다. 1414년(태종 14) 최해산(崔海山)에게 중국의 경번갑을 본(本)하여 제작하도록 명하였으나, 이들이 감독하여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파직시킨 일이 있다(『태종실록』 14년 11월 4일). 또한 1450년(문종 즉위) 이사임(李思任)에게 중국 체제의 갑옷을 만들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조선전기의 갑옷은 중국 갑옷을 모방하였음을 알 수 있다[『문종실록』 즉위 12월 23일 6번째기사].

당시 명나라의 갑옷은 앞에 트임이 있는 저고리에 치마가 양 무릎을 가리는 유상제(襦裳制) 형태였다. 그러나 유물로 남아 있는 갑주는 중국의 갑주 제도와는 달리 전형적인 카프탄형인 기본포형(基本袍形) 갑옷뿐이고, 명의 갑옷 양식은 주로 석인상에서 볼 수 있다.

형태

고려시대 정지가 입었던 경번갑은 가슴과 등은 쇠 미늘에 쇠고리를 연결하여 만들었고, 목과 소매는 쇠고리만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세종실록』 「오례」에는, “쇠 미늘과 쇠고리를 서로 사이하여 엮은 것이 경번갑”이라고 하였다[『세종실록』 오례 군례 서례 병기 갑옷·투구]. 이에 따르면 경번갑은 철편과 고리를 연결하여 만든 상체를 보호하는 갑옷으로, 앞뒤가 막히고 반소매이다. 철편 1개당 길이는 가로 5~8.5㎝, 세로 7.5~8㎝로서 철편 주위에는 작은 구멍을 내고 직경 1㎝의 고리를 계속 연결시켰는데, 안팎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앞판은 6편을 상하로 연결하여 1줄로 만든 것이 6줄로 되어 있고, 2줄은 여밀 때 속으로 들어가 겉에서 보기에는 4줄만 보이게 되어 있다. 뒤판은 상하 7편을 1줄로 하여 5줄로 되어 있다. 앞판은 좌우로 갈수록 철편 수를 줄여서 4편씩 1줄, 3편씩 2줄을 연결하여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어깨에는 철편을 넣지 않고 고리만 연결하여 팔꿈치까지 이르게 함으로써 팔놀림을 자유롭게 하였으며, 깃과 목가리개 부분은 손상이 심해 완전한 형태를 알 수 없다.

경번갑의 전체 길이는 72㎝로 둔부를 가릴 정도이고, 소매 위의 길이는 30㎝, 소매 밑의 길이는 22㎝, 소매 폭은 35㎝이다. 총 철편 수는 91개로 앞면이 36개, 뒷면은 35개, 옆면이 20개로 구성되어 있다. 목 부분은 확실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철환만으로 목둘레를 보호한 것으로 보인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시대에는 쇠로 미늘[札]을 만든 다음 수은을 끼얹은 뒤 가죽을 사용하여 엮어 만든 것은 ‘수은갑(水銀甲)’이라 하였다. 그을린 녹비(鹿比)를 사용하여 엮어 만들고 검은 칠을 한 것은 ‘유엽갑(柳葉甲)’이라 하고, 생저피(生猪皮)로 미늘을 만들고, 그을린 녹비를 사용하여 엮어 만든 것은 ‘피갑(皮甲)’이라 하였다. 또한 철사로써 작은 고리[小環]를 만들어 서로 꿴 것은 ‘쇄자갑(鏁子甲)’, 쇠 미늘과 쇠고리를 서로 사이하여 엮은 것은 ‘경번갑’, 종이를 접어서 미늘을 만든 뒤 녹비로 엮어 만들어 검은 칠을 한 것은 ‘지갑(紙甲)’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 김순규 외, 『한국의 군복식 발달사』1, 국방군사연구소, 1997.
  • 김정자, 『한국 군복의 변천사 연구』, 민속원, 1997.
  •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韓國의 甲冑』, 문화공보부, 1987.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 이강칠, 「한국의 갑주소고(甲冑小考)-두석인갑(豆錫鱗甲)을 중심으로-」, 『고고미술』136~137,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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