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포(苧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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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풀, 즉 저마(苧麻) 껍질의 섬유로 짠 직물.

개설

저포는 흔히 모시라고 하며 저(苧)·저마포(苧麻布)로도 불린다. 모시풀 껍질의 섬유로 짠 옷감으로서 원래는 담록색을 띠지만 정련·표백하여 하얗게 만든다. 질감이 깔깔하고 촉감이 차가우며, 빨리 말라 여름철 옷감으로 많이 이용된다.

연원 및 변천

문헌상으로 저포는 869년(신라 경문왕 9) 30승저삼단(三十升紵衫段)이 생산되어 당나라에 보내졌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무역에 주로 사용되던 백저포(白紵布)를 비롯해 세저포(細紵布)·사저포(紗紵布)·문저포(紋紵布) 등이 생산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저마·구승백저포·십승백저포·십이승백저포·별승백저포·극상세저포·극세저포·상저포·흑저포·황저포·황세저포·자세저포·청저포·아청저포·예단백저포·진헌백저포 등 다양한 저포가 기록에 등장한다. 이 중 일반적인 상거래나 조세 납부에 사용된 것은 정포(正布)라고 불리는 5승포였으며, 고가의 9승포나 10승포는 대부분 외교적인 업무에 사용되었다.

형태

저포의 품질은 승수(升數)로 평가하는데, 한 폭에 날실 80올로 직조된 것을 1승이라고 한다. 저포 5승포가 고려후기부터 교환화폐로서 기능하였고 조선시대에는 5승포에 길이 35척을 정포(正布)로 규정하여 전세를 수취하였으며, 10승 저포도 직조되어 공물로 납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저포 납부가 백성에게 큰 부담이 되자, 저포 대신 돈으로 납부하는 대전납(代錢納)의 형태로 대부분 변화하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중기까지는 다양한 저포 생산지가 언급되지만 후기에 이르면 저포 생산지를 이른바 ‘저산칠읍(苧産七邑)’ 혹은 ‘저산팔읍(苧産八邑)’으로 일컬었는데 모두 충청도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한산·서천·비인·남포·부여·임천·홍산·정산 등이 포함되었는데, 이 고을을 중심으로 5일장이 서고 한때 막강한 보부상단도 조직되었다. 하지만 말기에는 한산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서천군 한산면에서는 매년 한산모시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이재룡, 『조선전기 경제구조연구』, 숭실대학교출판부, 1999.
  • 박평식, 「조선초기의 화폐정책과 布貨流通」, 『동방학지』158,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유교성, 「忠淸右道 産八區 商務社右社-이조 말기 보부상의 조직과 기능에 대한 일고찰」, 『역사학보』10, 1958.
  • 유교성, 「忠淸右道 苧産八區 商務社左社-李朝負商의 연구」, 『역사학보』17·18합집,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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