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총(長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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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하여 연환(鉛丸)을 발사하는 화승식(火繩式) 점화법의 개인 휴대 화기로 성곽에서 외부의 장거리 사격 대상을 타격하는 총.

내용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선에 도입된 조총을 개발하여 사거리를 연장시킨 화승식 점화법의 개인 화기이다. 인조대에 장총은 군기시(軍器寺)에서 제작하였으며 조총보다 그 기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였다. 장총은 조총보다 크기가 컸으며 사격 목표가 원거리에 위치할수록 명중률이 높았다. 특히 성을 지키는 데 탁월한 성능을 지녔다. 다만 행군하면서 휴대하기에는 불편한 단점이 있었다. 인조대에는 강화도에 많이 배치되기도 하였다. 강화도에 장총을 배치하는 것은 숙종대에도 지속되었다. 1686년(숙종 12) 강화유수(江華留守)신정(申晸)은 강화도에 돈대(墩臺)를 설치한 후에 장총을 배치하였다. 신정은 강화도에 설치된 돈대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어서 조총을 쓰게 되면 미치지 못하므로, 방어에 무용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장총이라야 돈대 사이에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당시 돈대에 비치된 것이 열 자루에 불과하여 더 많은 양을 비치하고자 하였다(『숙종실록』 12년 9월 6일). 신정의 사례는 장총이 성곽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는 데 조총보다 우수한 화기였음을 보여준다. 장총이 조총보다 사거리가 우수하여 성곽에 배치하는 상황은 영조대 남한산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장총은 조선후기 화기 중에서 조총보다 사거리가 뛰어나 원거리의 적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로서 주로 성곽에 많이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영조대에는 장총을 천보장총(千步長銃)이라고 명칭하는 것이 실록에 나타나고 있어서 장총이 천보총(千步銃)을 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용례

江華留守申晸曰 江都自設墩臺 凡軍器中長銃 甚爲關重 今此墩臺 相去甚疎 常用鳥銃 不能及遠 必須長銃 可以用之 而一墩臺所藏 不過十柄 其數甚少 方欲加設 而所入鐵炭 無路辦備 李敏叙曾莅本府時 爲備鐵炭 略給價本 募人取辦 事畢啓聞 請加賞典 而迄無一人蒙賞者 故今欲依此收募 莫有願當者 誠爲可慨矣 上曰旣令應募 不賞其勞 事未妥當 令該曹及時收用可也(『숙종실록』 12년 9월 6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유승주, 『조선시대 광업사 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93.
  • 허선도, 『조선시대 화약병기사 연구』, 일조각, 1994.
  • 이왕무, 「임진왜란기 조총의 전래와 제조-「철포기」를 중심으로」, 『학예지』1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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