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총(千步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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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식(火繩式) 점화총(點火銃)으로 연환(鉛丸)의 발사 거리가 천(千) 보(步) 내외인 총.

내용

조선후기 조총(鳥銃)의 사거리를 천 보에 이르도록 개발한 화기의 명칭이다. 천보총은 조총이나 일반 화포들의 사거리가 백(百) 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거리를 연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작되었다. 숙종대 박영준(朴英俊)이 제작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나오고 있다. 영조대에 박영준의 아들인 박지번(朴枝蕃)이 천보총 두 자루를 만들었는데, 당시 조총보다 조금 무겁고 길었지만 900여 보의 사거리를 보였다. 영조는 군기시에서 박지번의 천보총을 모범으로 대량 생산하여 전국에 나누어 보내도록 했다(『영조실록』 1년 12월 26일). 그런데 당시 천보총의 형태와 사거리는 총을 만드는 장인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박지번의 천보총이 생산된 지 4년 후 수어청 소속의 무사 윤필은(尹弼殷)이 만든 천보총은 총대가 작고 매우 가벼워 모양이 하나의 철장(鐵杖)과 같았으며, 성을 순찰할 때 쏘았더니 1천 보를 넘는 사거리를 보였다(『영조실록』 5년 9월 12일). 특히 윤필은은 경종대부터 여러 번의 상소를 통해 전법과 군기를 바친 사람으로 총기 제작에 식견이 있었다. 영조는 한량(閑良)인 윤필은에게 별군직(別軍職)을 제수함과 동시에 그가 바친 천보총을 훈련도감에 보내 대량으로 생산하도록 했다(『영조실록』 5년 9월 13일). 군기시와 군영에서 제작하던 천보총의 제작 가격은 7냥으로 3냥 반인 조총의 두 배였으므로 많은 양을 제작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또한 천보총이 여타의 총들보다 뛰어난 병기였지만 제작 가격이 높은 것과 함께 소모되는 화약의 양도 일반 총보다 많아서 다른 총에 들어가는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조대 천보총의 제작과 화약의 생산은 대동미에서 조달하여 사용하였다.

용례

己丑軍器寺啓言 兵器無過於砲銃 而軍中行用之銃 其力所及 不過百步 肅廟朝有朴英俊者 造進千步銃云 故使英俊之子枝蕃 試造二柄 則視行用之銃 稍長稍重 而其力幾至九百餘步 此實古所未有之器械 西北兩道 自是關防重地 請依三南分送例 自武庫打造分送爲宜 上從之(『영조실록』 1년 12월 26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유승주, 『조선시대 광업사 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93.
  • 허선도, 『조선시대 화약병기사 연구』, 일조각, 1994.
  • 이왕무, 「임진왜란기 조총의 전래와 제조-「철포기」를 중심으로」, 『학예지』1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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