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궁대장(守宮大將)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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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수궁대장 |
한글표제 | 수궁대장 |
한자표제 | 守宮大將 |
상위어 | 당상관(堂上官) |
관련어 | 거둥[擧動], 군영(軍營), 군영대장(軍營大將), 궁궐(宮闕), 궁성(宮城), 능행(陵幸), 동가(動駕), 부원군(府院君), 수가(隨駕), 수궁장(守宮將), 숙위(宿衛), 순행(巡幸), 시위(侍衛), 온행(溫幸), 왕성(王城), 유도대신(留都大臣), 유도대장(留都大將), 행행(行幸) |
분야 | 정치/행정/관직·관품 |
유형 | 직역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왕무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수궁대장(守宮大將) |
왕이 궁궐 밖으로 행행할 때 궁궐 내부의 방어와 경비를 임시로 담당하던 지위.
개설
수궁대장(守宮大將)의 ‘수궁(守宮)’은 궁궐을 수호한다는 말이다. 수궁대장은 왕이 도성을 벗어나 외부에서 머물 경우 궁궐 내부의 경비와 수비를 일시적으로 총괄하던 지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수궁대장은 군영의 대장이 아니라 왕비의 아버지인 부원군(府院君)들이 주로 담당하였으며, 조선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세조대에는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가 수궁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숙종대에는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과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김주신(金柱臣)이 주로 수궁대장을 맡았다.
조선초기에는 부원군 이외에 왕자들이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1444년(세종 26) 세종과 왕비가 온수현(溫水縣)으로 온천 치료를 위해 행행할 때, 임영대군(臨瀛大君)이구(李璆)와 한남군(漢南君)이어(李於)에게 수궁을 담당하도록 했다. 따라서 수궁대장은 왕자가 담당하거나 2명 이상이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세종대 이후에 왕자들이 수궁을 담당하는 것은 보이지 않으며, 모두 왕의 장인인 부원군이 맡고 있다. 이것은 세조대 정변(政變) 이후 왕위를 노릴 수 있는 형제나 왕자들은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왕권의 안정을 지지하는 외척을 등용하는 모습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결과 조선후기까지 왕의 행행 시 궁궐의 경비는 외척이 담당했던 것이다. 특히 수궁대장의 역할이 궁궐 문의 개폐(開閉)를 관장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왕이 궁궐을 벗어나서 행행한 이후 궁궐의 문은 왕이 환궁(還宮)할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열 수 없었고 그것을 주재하는 것이 수궁대장이었다.
담당 직무
수궁대장은 왕이 도성을 벗어난 행행을 하거나 멀리 행차하여 당일 궁에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지정되었다. 그러므로 왕의 행행이 원거리가 아닌 도성 내를 행차하거나 가까운 거리로 이동하는 경거둥[京擧動]인 경우에는 수궁대장을 두지 않았다. 수궁대장이 왕의 측근인 외척인 반면, 도성을 방어하는 유도대장(留都大將)은 실질적인 군사력을 운영하는 군영대장으로 임명하였다. 물론 유도대장이 지휘하는 무력은 자신이 통솔하던 부대가 아니라 다른 군영을 인솔하는 형태였다. 이 점은 행행을 수행하는 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이 행행할 때 동반하는 수가대장(隨駕大將)은 자신의 부대를 통솔하지 못하고 다른 군영의 병사들을 인솔했다. 이는 왕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반정(反正)이나 정변을 예방하는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왕이 도성을 벗어난다고 해도 중앙군의 무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없었다.
수궁대장은 그 임무에 따라 궁궐에서 직숙(直宿)하였으며, 왕이 궁궐로 돌아온 뒤에 그 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 수궁대장은 궁궐 내 군영 부서의 한 곳을 정하여 머물렀다. 또한 매일 정해진 시간 궁궐 내의 경비 상태와 전날 야간의 숙위 상황도 왕에게 긴급으로 보고하였으며, 이는 왕이 궁궐로 돌아오는 날까지 지속하였다. 정해진 시간에 궁궐 문의 개폐를 하지 않으면 파직되기도 하였다.
변천
수궁대장이 왕의 행행 시 궁궐을 숙위하는 것은 고종대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근대적인 군제의 개편과 법궁(法宮)의 변화에 따라 수궁대장은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금위영거동등록(禁衛營擧動謄錄)』
- 『어영청거동등록(御營廳擧動謄錄)』
- 이왕무, 「조선시대 국왕의 온행 연구」, 『국사관논총』 108, 2006.
- 이왕무, 「조선후기 국왕의 도성내 행행의 추세와 변화」, 『조선시대사학보』 43, 2007.
- 이왕무, 「조선후기 국왕의 행행시 궁궐의 숙위와 유도군 연구」, 『군사』 62, 2007.
- 이왕무, 「조선후기 국왕의 능행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