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노비(選上奴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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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에 거주하면서 일정 기간 경중 각사에 올라와 입역하는 노비.

개설

선상노비(選上奴婢)는 지방에서 올라와 일정 기간 경중(京中) 각사(各司)에 입역하는 노비를 말한다. 납공노비에 비해 신역(身役) 부담이 무거운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입역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였고 급료도 지급되지 않았다. 조선후기 이후 대립제(代立制)가 만연하였고, 임진왜란으로 노비들이 흩어진 17세기 이후 사라졌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공노비는 각사·각관(各官)·내수사(內需司) 노비로 구분되며, 각사노비는 다시 경거(京居)·외거(外居) 노비로 나뉜다. 이 중 외거노비를 다시 선상노비와 납공노비로 나누는데, 일정 기간 서울에 올라와 신역을 제공하는 노비가 선상노비이고 정해진 신공(身貢)만을 납부하는 노비가 납공노비(納貢奴婢)이다. 선상노비는 소속 관서의 업무량에 따라 매년 혹은 몇 년에 한번 선상하므로 납공노비보다 부담이 큰 것으로 인식되었다(『단종실록』 2년 12월 3일).

또한 선상노비는 경중에 선상하는 동안 드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도록 되어 있었다. 대신 선상노비 각각에게 2명의 봉족(奉足)을 지급하여 그들에게서 면포 1필과 정포(正布) 1필을 받아 근무 기간 동안의 경비에 보태도록 하였다. 이 외에는 따로 정기적인 급료가 지급되지 않았다.

변천

선상노(選上奴)가 유고(有故)하여 대체(代替)를 바라는 경우는 소재지 관아(官衙)에서 매월 면포 2필을 징수하고 진성(陳省)에 기록해서 올려 보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선상노비의 대립(代立)이 만연하게 되었고, 전란 이후 노비가 도망치고 흩어져 선상제 자체가 유지되지 못하다가 17세기에는 전면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지승종, 『조선 전기 노비 신분 연구』, 일조각,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