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공(石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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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

개설

석공(石工)은 돌을 다루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관아에 등록되어 부역 체계에 따라 번(番)을 들어서 사역하였다. 이들은 선공감(繕工監), 수리도감(修理都監)에 배속되었다.

담당 직무

석공의 역할은 다양하였는데, 수리도감에 소속된 석공들은 왕실의 담장 수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연산군일기』에서 수리도감 제조유순·강귀손은, 동서 양쪽 담장의 기초를 쌓기 위해 돌을 실어 오려면 군사 3천 명을 써도 부족하니 담장 쌓는 연호군(烟戶軍)이 실어 들이도록 하고, 석공 또한 지방에서 징집하자고 요청하였다(『연산군일기』 10년 8월 19일).

변천

세종 때에 석공·목공·영인(令人)·악공·무공(舞工)은 비록 서반의 관직을 받았더라도 반열(班列)에 수반(隨伴)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기사를 통해 볼 때(『세종실록』 15년 10월 9일), 조선초기에는 석공에게도 품계를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초기에는 체아직(遞兒職)이 부여되지 않았으나, 1455년(단종 3) 이후에는 석공에게도 목공의 예에 따라 체아직을 부여하고, 목공·석공·노야장 모두 사일(仕日)을 합하여 계산하여 사일이 많은 자를 우선적으로 서용(敍用)한 것으로 여겨진다(『단종실록』 3년 3월 10일). 또한 목공·석공 각 10명과 감역관(監役官) 2명의 식사를 사옹원(司饔院)에서 담당하도록 하라는 『연산군일기』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석공의 식사는 사옹원에서 담당하였다.(『연산군일기』 9년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