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자(生生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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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정조 16) 규장각에서 정조의 명을 받아 만든 목활자.

개설

생생자(生生字)는 정리자(整理字) 주조 시에 바탕 글자로 삼은 목활자로서 1792년에 황양목(黃楊木)을 사용하여 만든 목활자이다. 현재까지 활자 실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활자의 자보(字譜)가 남아 있어서 제작 당시의 글자 수와 보관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일성록』에 기록된 생생자 제작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전에 주조한 활자의 동체가 가지런하지 않아서 인쇄할 때 젖은 종이를 써서 가지런히 붙여 1판을 인쇄할 때마다 별도로 몇 사람을 세워서 주묵으로 활판(活版)의 형세에 따라 교정하게 하는데도 여전히 기울고 움직이는 문제가 있어서 시일을 허비하였다. 이에 따라 1792년 청나라의 사고전서취진판식(四庫全書聚珍版式)을 본떠 강희자전자(康熙字典字)를 자본(字本)으로 황양목을 사용해 대소(大小) 320,000여 자를 완성시키고 생생자라 이름 지었다고 하였다.

생생자는 처음에 곧바로 금속활자로 제작하기 위하여 자보까지 만들었으나 중지되고 목활자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1792년 윤4월 24일 내각에서 어제(御製)를 찍으려고 새로 나무로 만들어 찍은 『취진자보』를 완성하였고, 이를 평양감영인 기영(箕營)에 보내 동으로 160,000자를 주조하려 하였으나 중지하고 6월 29일 내각에서 목활자로 바꾸어 제작하게 한 것이다.

이때 『취진자보』에 해당하는 책이『생생자보(生生字譜)』라는 서명으로 현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인 『생생자보』는 생생자 159,246자에 대한 기록이다. 현재 82장 1책으로 된 완본 4책과 11장으로 된 결본 1책이 남아 있다. 완본은 각 활자 아래에 활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생생자보』의 권말에는 큰 자의 원자(原字) 14,986자, 첩자(疊字) 144,260자를 합하여 159,246자를 표시하고 있고, 마지막에는 소자(小字)도 이와 같다고 하여 총 수는 318,492자였음을 알 수 있다. 자보의 내용은 활자를 보관한 장(欌)에 따라 기록되었다. 이는 순조 때 작성된 『판당고』 기용조(器用條)에 기록된 ‘生生字欌五坐(생생자장오좌)’로도 확인할 수 있다.

변천

정원용(鄭元容)의 『수향편』 주자소철목주자(鑄字所鐵木鑄字)의 기록에 의하면 1857년(철종 8)에 일어난 화재로 생생자는 모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

생생자는 정조 시대에 제작된 목활자이다. 정조는 세자 시절부터 활자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동궁 시절부터 할아버지인 영조께 청하여 오주갑인자(五鑄甲寅字)인 임진자(壬辰字)를 150,000자 주조하였다. 그 뒤 1777년(정조 1)에 150,000자를 가주(加鑄)하여 내각에 보관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육주갑인자(六鑄甲寅字)인 정유자(丁酉字)이다. 그 뒤 임인년에 다시 한구(韓構)의 글씨를 자본으로 하여 80,000여 자를 주조하게 했는데, 이것이 재주한구자(再鑄韓構字) 또는 임인자(壬寅字)라 불리는 활자이다. 6년에 한 번씩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약 380,000여 자를 주조한 것이다.

여기에 또다시 새로운 글자체인 정리자를 주조하게 되는데 정리자의 주조 이전에 생생자를 만들어서 바탕 글자로 삼았다. 생생자를 바탕으로 삼은 정리자는 다른 활자에 비해 글자가 가지런하며 활자를 배열하는 방식도 간편하고 빨라서 비용과 노력이 전에 비해 월등히 나아졌다고 적고 있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생생자보(生生字譜)』
  • 김두종, 『한국고인쇄기술사』, 탐구당, 1974.
  • 백린, 『한국도서관사연구』, 한국도서관협회, 1969.
  • 윤병태, 『조선후기의 활자와 책』, 범우사, 1992.
  • 천혜봉, 『한국목활자본』, 범우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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