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장(權順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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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07년(선조40)∼1637년(인조15) = 31세]. 조선 중기 인조 때의 충신으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에서 순절하였다. 자는 효원(孝元)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형조 참판권진기(權盡己)의 아들이고 이정직(李廷直)의 외손자이다.

병자호란 때 순절

1624년(인조2) 진사(進士)가 되고, 음보(蔭補)로 의금부 도사(都事) · 건원릉(健元陵) 참봉 · 빙고(氷庫)별제(別提)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학업을 계속하였으나,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였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궁중의 왕비와 왕자는 물론 도성의 사대부들이 모두 강화도(江華島)로 피난하였는데, 그도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검찰사(檢察使)김경징(金慶徵)과 강화유수(江華留守)장신(張紳) 등은 고려 시대처럼 강화성(江華城)이 천연적 요새인 것만을 믿고 방어할 대책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이때 그는 동지들과 힘을 합하여 의병(義兵)을 일으키고, 강화성을 지키다가 순사(殉死)할 것을 다짐했다. 청(淸)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오자, 관군과 의병이 용감하게 항전하였으나, 이듬해 정월 결국 강화성은 적에게 함락되었다. 이에 상신 김상용(金尙容)이 화약을 폭발시켜 죽을 때 그도 따라서 함께 죽었다. 이튿날 그의 처와 누이동생도 이 소식을 듣고 목을 매어 자결했다. 또, 그의 동생 권순열(權順悅)과 권순경(權順慶)도 적과 싸우다가 모두 죽었다.

무덤과 제향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근(陽根) 화대곡(禾大谷) 선산(先山)에 있다. 나라에서 그를 지평(持平)에 추증하였다가, 뒤이어 좌찬성(左贊成)에 추증하였다. 경기도 강화(江華)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관력, 행적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인조실록(仁祖實錄)』
  • 『송자대전(宋子大全)』
  • 『노서유고(魯西遺稿)』
  • 『농은유고(農隱遺稿)』
  • 『강한집(江漢集)』
  • 『시남집(市南集)』
  • 『학봉집(鶴峯集)』
  • 『직재집(直齋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