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관(權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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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함경도, 평안도의 소규모 진보(鎭堡)의 방위 책임을 담당했던 무관직.

개설

조선초기에 여진족과 접경을 이루거나 왜선이 출몰하던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의 변경 지역에 소규모 진보를 설치하여 적의 침입을 방지하였다. 권관(權管)은 그 방어 책임을 맡은 종9품 무관직이다. 초창기에는 임시로 관할하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가 4군 6진의 개척이 본궤도로 오르면서 정식 관직이 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등재되지 못했으며 임명 조건이나 절차가 명확하지 않았다. 『속대전(續大典)』에 정식으로 등재되고, 그 뒤 무관으로 대우받게 되면서 상피법(相避法)의 적용 대상이 되었다.

담당 직무

품계는 종9품으로, 경상도, 함경도, 평안도의 변경 지역에 설치된 소규모 진보의 방위 책임자였다. 『경국대전』에는 보이지 않으나 이미 『세종실록』에서부터 그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임시로 관할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4군 6진 개척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북방 여진과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이에 북방 압록강·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구자(口子)라는 이름의 규모가 크지 않은 방어 기지를 설치해서 그들의 침입을 저지하였다. 『단종실록』에 여름철이 되면 병사를 구자로 파견해서 농민들을 보호하게 하자는 건의가 올라오는 것으로 미루어 대체로 이즈음부터 관직으로 서서히 자리 잡는 것으로 보인다(『단종실록』 3년 4월 13일). 다만 그들에게 포폄(褒貶)이 없어 방어가 소홀하다며 만호(萬戶)를 둘 것을 청하고 있어서 아직까지 정식 관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단종실록』 1년 1월 24일). 그 뒤에도 결국 『경국대전』에 등재되지 못했다.

법제화되지 못해서인지 임명에 관한 명확한 규정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조 때 함길도도체찰사구치관(具致寬)의 보고에서 나이가 젊고 무예에 재주가 있는 자가 임명되는 사례가 있다고 나타나 있다(『세조실록』 7년 4월 23일). 그러나 잘 골라서 임명하지 않고 새로 소속된 내금위(內禁衛) 따위로 임용하여 군사들에게 경멸을 당하니 무과(武科) 출신자 중에서 관록이 높고 명망이 있는 자를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출되어 국왕의 승인을 얻었다.

1523년(중종 18) 만포첨사이성언(李誠彦)은 무신의 초임직(初任職)으로 삼아야 한다며 장수에게 임용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고 상소했다(『중종실록』 18년 12월 11일). 이로써 임명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얼마 뒤 경연관이 변방의 만호와 권관에 무과 출신자를 임명하면 그들이 앞날을 생각하여 불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중종실록』 20년 윤12월 4일).

함경도와 평안도의 변경 지역 외에 파견된 곳은 경상도였다. 이미 『단종실록』에 경상도거제도와 같이 왜선(倭船)이 자주 닿는 중요한 지점에 병선(兵船)을 배치하고 권관을 파견하도록 했다(『단종실록』 1년 1월 24일). 이는 왜구를 막기 위함이었다. 중종 때는 황해도 안악 절양해(絶瀼海)와 장연 대진관(大津關), 비파곶 등지에 본도의 사람으로 권관을 삼아 몰래 중국에서 드나드는 장삿배를 단속시켰으나, 얼마 후에 황해도에 설치된 것들은 폐지되었다.

변천

종9품 무관직으로 『속대전』에 정식으로 등재되었다. 경상도에는 2명, 즉 율포(栗浦)와 삼천포(三千浦)에 두었다. 함경도에는 14명이 있었는데, 소농보(小農堡) 등은 남도에, 오촌(吾村)·보화보(寶化堡) 등은 북도에 소속시켰다. 그들 중에 황토(黃土)·기이(岐伊)·보화보의 권관은 병영에서 자체 임용하도록 했다. 평안도에는 18명으로, 건천(乾川)·광평(廣平) 등에 두었다.

지위가 낮아도 무관이므로 관찰사·절도사·수령·첨사·만호·별장과는 서로 상피(相避)토록 하여 친족이나 기타 관계로 같은 곳에서 벼슬을 하거나 서로 송사, 시관 따위를 피하도록 했다. 근무 일수는 24개월이었는데, 다만 초임자의 경우에는 30개월이 차면 교체하도록 했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육군본부, 『한국군제사-근세조선전기편-』, 보진재, 1968.
  • 민현구, 『조선초기의 군사제도와 정치』, 한국연구원, 1983.
  • 오종록, 「조선초기 양계의 군사제도와 국방체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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