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봉(哥舒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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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부(鹵簿) 행렬에 편성된 의장용 도구.

개설

‘노부’는 왕이 외부로 행차할 때 동원되던 의장(儀仗) 행렬을 말한다. 궁궐 안에서 시행될 때는 ‘의장’이라 불렀다. 왕의 노부는 그 규모에 따라 대가(大駕), 법가(法駕), 소가(小駕)로 구분되었다. 왕 이외에 왕비, 왕세자, 왕세손의 의장도 있었다. 노부 행렬에는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각종 깃발, 부채, 덮개, 병기, 악기 등 다양하고 화려한 의장 용품이 사용되었다. 가서봉은 이러한 의장 용품 가운데 하나로, 노부에 참여한 군사들이 좌우로 나뉘어 들고 가는 몽둥이를 가리킨다.

연원 및 변천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따르면, 가서봉은 웅골타자(熊骨朶子), 표골타자(豹骨朶子)와 함께 중국 수(隋)나라에 기원을 둔 의물(儀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왕의 노부에 편성되었다. 대개 20개가 동원되었는데, 서경과 남경으로 순행(巡幸)을 나갔다가 궁궐로 돌아오는 왕을 영접하는 경우에는 10개가 배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가 노부에 10개, 법가 노부에 6개, 소가 노부에 4개가 사용되었다. 왕의 가마인 어연(御輦) 앞에, 다른 의장과 함께 좌우로 나뉘어 진열되었다. 군사 1명당 1개의 가서봉을 들고 행렬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군사는 홍의(紅衣)에 피모자(皮帽子)를 착용하였다.

세종대에 경창부윤(慶昌府尹)정척(鄭陟)이 새로이 제정한 왕세자의 대가노부에도 가서봉 2개가 포함되어 있다(『세종실록』 30년 3월 24일). 그러나 성종 연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왕비 의장이나 왕세자 의장에는 가서봉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1789년(정조 13) 10월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을 수원으로 옮길 때는 가서봉 4개를 다른 의장과 함께 대여(大輿) 앞에 배치하였다(『정조실록』 13년 10월 5일).

형태

조선시대에 사용된 가서봉은 그 시기에 따라 형태 및 제작 방법이 약간 달랐다. 조선전기의 제작법은 다음과 같다. 붉게 칠한 장대 위에 쇠꼬챙이를 연결하여 동전(銅錢) 22개를 꿰고, 그 위를 자주색 비단 수건으로 덮어씌운다. 그런 다음 다시 수건의 하단을 자주색 비단 띠로 묶고 그 양쪽 끝을 드리워 만들었다. 그에 비해 조선후기에는 쇠꼬챙이 대신에 직사각형 모양의 널판을 장대 위에 연결한 뒤 비단 수건을 씌워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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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의궤반차도와 거동기록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