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다종(花茶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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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로 제작된 찻잔.

개설

조선 문종 때부터 중국 청화백자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예컨대, 1450년(문종 즉위)에 명나라에서 활동한 조선인 환관 정선(鄭善)이 청자나 청화백자에 금채가 곁들여진 청묘금주주(靑苗金酒注)와 함께 화다종(花茶鍾) 6개 등을 바치고, 왕세자에게 청화다종(靑畵茶鐘) 6개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문종실록』 즉위년 8월 6일). 이렇게 문종 즉위를 축하하는 명나라 사절단에 의해 중국 자기가 왕뿐 아니라 왕세자에게도 전해졌다. 여기에서 화다종은 청화백자로 만든 찻잔으로 여겨진다.

연원 및 변천

중국 명나라 때 조소(曹昭)가 지은 『격고요론(格古要論)』에는 원나라 때 새로 생긴 자기 종류로 다종을 들고 있다. 이전부터 종을 사용했지만 다종은 원나라 때 처음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유물을 통해 볼 때 원나라 말부터 유행하던 구연이 바깥으로 벌어진 형태의 잔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형(器形)은 이미 고려말부터 유입되어 고려 도자의 기형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려말의 간지명 청자에서도 보이는, 구연이 바깥으로 벌어진 기형의 완은 이후 조선초기에도 크게 유행하여 완의 대표적인 기형으로 자리 잡았다.

형태

화다종의 기형은 중국의 경우 원나라 전기와 후기에 바뀌었다. 원나라 전기에는 완의 측벽선이 직선에 가깝게 내려가다 저부에서 둥글게 들어가 넓고 낮은 굽에 이르는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원나라 후기가 되면 구연부가 바깥으로 크게 벌어지는 전형적인 완의 형태로 바뀌고, 명나라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국내에 유입된 화다종도 주로 이러한 형태의 찻잔일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 『격고요론(格古要論)』
  • 김영원, 『조선시대 도자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 이현정, 「조선 전기 백자에 보이는 명대 자기의 영향」,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