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로(紅露)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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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홍로 |
한글표제 | 홍로 |
한자표제 | 紅露 |
동의어 | 홍로주(紅露酒), 홍주(紅酒) |
관련어 | 노주(露酒), 송화천로주(松花天露酒), 자초(紫草)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재료 | 청주(淸酒), 자초(紫草)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홍로(紅露)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31년 9월 8일, 『영조실록』 32년 7월 3일 |
청주를 증류하면서 자초가루를 통과시킨 소주.
개설
청주를 증류하여 만든 소주로 증류기 입구에 잘게 썬 자초(紫草)를 넣어서 내린 술이다. 자초의 색으로 인해서 술의 색이 붉기 때문에 홍주(紅酒)라고도 부른다. ‘노(露)’는 증류기에 맺힌 이슬을 가리키는 말로 증류한 소주이다.
만드는 법
세조 때의 어의(御醫)였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에 홍로주(紅露酒) 만드는 법이 나온다. 이 책에서는 송화천로주(松花天露酒)의 다른 이름이 홍로주라고 하였다. 멥쌀 열다섯 말이 주재료이며, 5월에 딴 송화(松花) 말린 것이 부재료이다. “찹쌀 다섯 말을 가루로 내고, 송화 다섯 되와 물 세 말에 진하게 달여 그 찌꺼기를 걸러 낸다. 합하여 죽을 쑤어 차게 식혀 누룩 일곱 되와 잘 섞어 담는다. 5일 후 멥쌀 열 말을 잘 쪄서 역시 송화수 다섯 말을 진하게 달여 섞은 다음 마찬가지로 식기를 기다려 누룩가루 석 되를 넣고 합하여 항아리에 담는다. 14일 후 열어서 사용한다.” 이 술은 일반 송화가 들어간 청주이다. 이로 미루어 『산가요록』의 홍로주는 조선후기 소주 계통의 홍로주와 다르다.
보통 노주(露酒)라고 하면 증류주를 가리킨다. 서유구(徐有榘)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정조지(鼎俎志)」에서 홍로주를 소주의 하나로 보았다. 『문견방(聞見方)』을 인용하여 ‘내국홍로방(內局紅露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국은 왕실의 내의원(內醫院)을 가리키며, ‘내국홍로방’이란 왕실에서 홍로주를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자초를 잘게 썰어 증류기 입구에 마개처럼 넣는다. 증류기에 청주인 향온(香醞)을 붓고 끓이면 입구에 이슬이 맺히는데 술의 색이 진한 홍색을 띤다. 내국에서는 청주를 은으로 만든 증류기에 넣고 끓여서 만드는데, 민간의 소주와는 다르다. 이것은 지금의 진도 홍주와 비슷하다.
『임원경제지』 「정조지」에서는 또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을 인용하여 ‘관서홍로방(關西甘紅露方)’ 만드는 법도 적어 두었다. 이 술은 화주의 세 배나 되게 고아 만든 것으로 술 빚는 항아리 밑에 꿀을 바르고 다시 자초를 넣어 맛이 매우 달고 맹렬하며 빛이 연지와 같은데, 홍로주 중에서 가장 고급에 속한다고 했다.
연원 및 용도
1755년(영조 31)에 금주령을 내리면서 다음 해부터 왕실과 공(公)에서부터 아래로 백성에 이르기까지 제사와 연례(宴禮)에는 예주만 쓰고 홍로(紅露)와 백로(白露), 그리고 기타 술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모두 금한다고 하였다(『영조실록』 31년 9월 8일). 영조의 강력한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사대부가에서 홍로주를 마시다가 적발되는 일이 일어났다(『영조실록』 32년 7월 3일). 이로 미루어 이 시기에 홍로주를 많이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백로주는 청주를 증류한 술로 자초와 같은 재료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색이 맑은 일반 소주를 말한다.
참고문헌
- 『산가요록(山家要錄)』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한복려 엮음, 『다시 보고 배우는 산가요록』, (사)궁중음식연구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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