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虎鬚)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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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호수 |
한글표제 | 호수 |
한자표제 | 虎鬚 |
관련어 | 맥수(麥穗), 융복(戎服), 전립(戰笠), 주립(朱笠), 호수통(虎鬚桶)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제구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은수 |
용도 | 무관용 |
재질 | 호랑이 수염, 보리이삭[麥穗]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호수(虎鬚)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29년 6월 9일, 『영조실록』 5년 2월 5일, 『순조실록』 34년 2월 30일, 『고종실록』 1년 7월 10일 |
주립(朱笠)에 장식으로 꽂던 호랑이 수염 모양 장식품.
개설
조선시대 시위(侍衛) 대장의 융복(戎服)에 갖추어 쓰는 관모에 꽂아 장식하는 것으로, 원래 맥수(麥穗), 즉, 보리 이삭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전하는 호수(虎鬚)는 흰 빛깔의 깃털이나, 세죽(細竹)으로도 만들었다고 한다. 4개가 1조이다.
연원 및 변천
호수는 융복의 입자(笠子)에 보리 이삭을 꽂아 장식한 데서 시작되었으나. 호수의 재료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뇌물로 사용될 정도로 귀중한 물품이었던 것 같다(『중종실록』 29년 6월 9일).
호수의 사용은 현종이 온천에 거둥할 때 시작되었는데, 백관이 입자에 보리이삭을 꽂다가 이후에 호수에 장식을 더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득록(日得錄)』에는 신하들에게 보리 이삭을 꽂아 풍년을 기념하게 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호수는 무관 중에서도 높은 품계에서 사용하였는데, 효장세자의 묘에 임곡할 때 시위의 융복에 꽂은 호수를 제거하도록 한 기록이 있고, 사묘(私廟)에 동가(動駕)할 때 대장은 호수와 입식을 갖추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영조실록』 5년 2월 5일). 이후 융복 제도의 개혁에 대한 논의 중 전립에 호수를 꽂는 것은 오래된 풍습이므로 존속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어 순조대까지도 호수의 풍습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순조실록』 34년 2월 30일). 고종대에는 조신의 융복에 착용하던 호수·주립·패영(貝纓)을 없애고 그 대신 칠사립(漆紗笠)으로 하도록 하였다(『고종실록』 1년 7월 10일).
형태
형태는 호랑이 수염 모양을 가느다란 나무 끝에 부착시켜 마치 보리 이삭같이 만들었다. 끝이 뾰족한 나무에 여러 층으로 수염 줄기를 두르고 가죽으로 감았다. 전체길이는 36~38㎝ 내외, 호랑이 수염 길이는 25~28㎝ 내외이다.
호수는 4개가 1조이므로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보관하는 통이 있다. 호수통의 전체적인 형태는 팔각기둥 모양이며 윗면을 막게 되어 있다. 뚜껑은 경첩으로 연결하고 경첩의 반대편에 잠금 장치가 있다. 내부에는 호수를 고정시켜 보호하는 판이 있으며 대나무로 판을 연결하였다. 통의 길이는 51㎝ 내외이다. 현전하는 유물은 호수의 재료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로 털 또는 세죽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말기에 무녀(巫女)가 군복이나 융복 차림에 호수를 꽂아 장식한 주립을 착용한 예가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우옥주(禹玉珠) 만신의 유품인 호수갓이 있으나 이 호수는 호랑이 수염이 아닌 새의 깃털로 보인다.
참고문헌
- 『일득록(日得錄)』
- 온양민속박물관, 『朝鮮時代의 冠帽』, 1998.
- 강순제, 「軍服 冠帽에 관한 硏究-戰笠(氈笠)의 수용·발전·쇠퇴의 과정을 중심으로-」, 『學藝誌』제4집 ,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199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