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의(八議)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팔의 |
한글표제 | 팔의 |
한자표제 | 八議 |
관련어 | 의친(議親), 의고(議故), 의공(議功), 의현(議賢), 의능(議能), 의근(議勤), 의빈(議賓) |
분야 | 정치/사법/재판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구덕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팔의(八議) |
죄를 범했을 때 해당 형법으로 처리하지 않고 조정 중신들의 평의를 거쳐 왕이 죄를 경감해주는 특권 규정이 적용되는 8가지 유형의 사람으로, 왕의 친족과 근신들을 형사상 우대하던 규정.
개설
팔의(八議)는 의친(議親), 의고(議故), 의공(議功), 의현(議賢), 의능(議能), 의근(議勤), 의빈(議賓)을 말한다. 팔의 규정은 주례(周禮)의 팔벽(八辟)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漢)대에 ‘팔의’로 고쳤고, 삼국시대 위(魏)나라 때 정식 법률로 입법되어 『당률소의(唐律疏議)』, 『대명률(大明律)』, 『대청율례(大淸律例)』로 계승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부터 『대명률』을 형률로 수용하면서 ‘팔의’를 적용하였다.
내용 및 특징
『대명률』과 조선의 실정을 반영하여 부분적으로 용어나 내용을 바꾼 『대명률직해』에 규정된 ‘팔의(八議)’의 대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의친(議親)은 황제의 단문[袒免] 이상 친속, 태황태후나 황태후의 시마(緦麻) 이상 친속, 황후의 소공 이상 친속, 황태자비의 대공 이상 친속을 말한다.
② 의고(議故)는 황가에 오랜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서 평소에 (왕을) 모시고 오랫동안 특별히 은혜로운 대우를 받은 자를 이른다.
③ 의공(議功)이란 능히 적장(敵將)을 참하고 적기(敵旗)를 빼앗아 만 리에 걸친 대군의 예봉을 꺾었거나, 혹 무리를 거느리고 귀부(歸附)해 와서 나라를 한 때 편안하게 하였거나, 혹 변방을 개척하여 큰 공로가 있거나 하여 그 공로를 태상기(大常旗)에 기록한 사람을 말한다. (직해에서는 적장(敵將)을 능히 베었거나, 적군의 정기(旌旗)를 능히 빼앗았거나, 만 리에 걸친 대군의 예봉을 꺾었거나, 다른 나라의 군인의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 와서 한 나라의 인민을 편안하게 하였거나, 변방의 국경을 개척하여 큰 공로가 있거나 하여 그 공로를 태상기에 기록해 놓은 사람이라 했다.)
④ 의현(議賢)은 큰 덕행이 있는 현인군자로서 그 언행이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을 말한다.
⑤ 의능(議能)이란 큰 재능이 있어 능히 군대를 정돈할 수 있거나 정사를 다스릴 수 있어 임금의 보좌가 되고 인륜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말한다.
⑥ 의근(議勤)이란 높은 무관과 문관[將吏]으로 삼가 관직을 지키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무를 수행하였거나 혹은 먼 지방에 사신으로 나가 어려움을 겪어내어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⑦ 의귀(議貴)란 작(爵) 1품 및 문‧무 직사관 3품 이상과 산관(散官)으로 2품 이상인 사람을 말한다.
⑧ 의빈(議賓)이란 전 왕조[先代]의 대를 이어 국가의 빈객이 된 사람을 말한다.
이상의 팔의에 해당하는 자가 죄를 범하면 담당 관서에서 멋대로 잡아다 추문[勾問]하지 못하고 일차로 왕에게 주문(奏聞)하여 왕명을 기다린다. 다음 왕으로부터 추문하라는 명이 내려지면 다시 범한 죄상과 팔의의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낱낱이 기록해서 아뢰고 ‘의논[議]’할 것을 청하고, 해당 관원들이 모여 의논하고 의논이 정해지면 왕에게 아뢰어 재결을 받는다.
여기서 ‘의논[議]’이라는 것은 그 본래의 정상을 살펴 그 범한 죄를 의논하는 것을 말하며, 왕에게 아뢰는 주본(奏本)에는 (의)친, (의)고, (의)공, (의)현, (의)능, (의)근, (의)귀, (의)빈 등 마땅히 의논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과 범한 바의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開寫] 밀봉하여 아뢰어 임금의 명을 받는다. 만약 임금의 명을 받들어 추문(推問)할 경우, (그때) 비로소 추문하여 책임을 추궁하고, (죄인이) 명백하게 자복을 하였으면 마땅히 받아야 할 죄를 낱낱이 기록하여 먼저 아뢰고,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사보(四輔)·간원(諫院)·형부(刑部)·감찰어사(監察御史)·단사관(斷事官)들, 조선의 경우에는 도평의사사·대성·형조 등의 관원들로 하여금 모여 죄를 의논하도록 청하고, 의논이 정해지면 (임금에게) 아뢴다. (범한 죄가) 사형에 이르는 경우 오직 "범한 죄를 기준으로 형률에 의거하니 사형에 합당하다."고 이를 뿐 감히 교형이니 참형이니 바로 말하지 못하고 왕으로부터 재결을 받아야 한다. 다만, 10악의 범죄 즉 모반(謀反), 모대역(謀大逆), 모반(謀叛), 악역(惡逆), 부도(不道), 대불경(大不敬),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의(不義), 내란(內亂)의 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의논하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한편 팔의에 해당하는 자의 부모, 조부모, 처, 자, 손의 범죄에 대해서도 본인과 똑 같게 처리했다. 또 황친(皇親)이나 국척(國戚) 및 공신의 외조부모·백숙부모·고모·형제·자매·사위·조카, 그리고 4품·5품 관원의 부모와 처 및 습음(襲蔭)에 합당한 자·손이 죄를 범하면 유사 율에 의거하여 추문하고 적용할 법률을 의논[議擬]하되 주문하여 임금의 재결을 받도록 하였다.
다만 10악(十惡) 중 모반(謀反)이나 모대역(謀大逆)에 연좌되거나 간음하거나 도적질하거나 살인하거나 재물을 받고 법을 굽힌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동성 4·6촌 형제, 동성 5촌 숙부, 외숙, 이모부, 고모부, 처남, 어머니의 4촌 형제의 자식, 외손 등 그 나머지의 친속이나 노복·관장(管莊)·작인이 세력을 믿고 양민을 침해하거나 관부(官府)를 능멸하는 경우에는 일반인의 죄에 1등급을 더하고 왕에게 (의논을) 청하는 율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팔의’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에 준하여 처리하기도 하였다. ‘의귀(議貴)’의 범위를 벗어나는 4·5품의 관원이 법을 어겼을 때에는 담당 관서에서 바로 처리하지 못하고 왕에게 주청하여 그 지시를 기다려 처리하도록 하였고, 6품 이하의 관원이 법을 어겼을 때에도 해당 관서가 아닌 분순어사(分巡御使), 안찰사(按察使), 분사(分司)가 조사하여 의결한 다음 왕에게 보고하여 결재를 받아 처리하도록 하였다. 팔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중신들이 모여 ‘의논’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사법 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왕의 결재를 받아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이들에게도 사법상의 특혜를 베풀고 있었다.
팔의 해당자들을 조사하거나 신문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고문하는 것도 금하였다. 팔의 해당자들이 관련된 형사 사건은 방증에 의해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팔의 해당자가 법을 어겼을 때 벌을 경감해주는 것과 마찬가지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들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가중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일반인들 사이에서 손이나 발로 구타하여 상해를 입혔으면 태 30, 상해를 입히지 않았으면 태 20에 처하도록 했으나, 일반인이 왕의 단문[袒免]친 이상을 구타하면 장 60·도 1년에 처하고, 상해를 입혔으면 장 80·도 2년에 처하도록 하였다.
변천
조선시대에 『대명률』을 형률로 수용하면서 팔의(八議)에 관한 규정도 받아들였다. 다만, 조선 사회의 실정을 감안하여 『대명률직해』에서는 대상자에 대한 표현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다.
먼저 의친(議親) 규정을 보면 왕실에 대한 호칭을 조선에 맞게 바꾸었고, 그 범위에 대해서는 "왕의 친속[王親]으로 고조가 같은 동성 8·9촌의 친속, 왕의 조모와 왕의 친모(親母)의 시마 이상의 친속(8촌), 왕비의 소공 이상의 친속(6촌), 세자비의 대공 이상의 친속(4촌)"으로 규정했다.
이상의 의친 범위는 현왕(現王)의 유복친만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선왕(先王)의 유복친과 이성(異姓) 유복친이 의친의 범위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성종대에 불거진 논란은 『경국대전』의 의친에 대한 ‘수직(授職)’과 ‘복호(復戶)’ 규정에서 "모두 선왕(先王)과 선후(先后)의 친족이 같다."고 했으므로 선왕의 유복친과 이성 유복친이 의친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결론은 확인할 수가 없고, 다만 조선후기에 편찬된 『고사신서(攷事新書)』, 『전률통보(典律通補)』, 『육전조례(六典條例)』 단계에 이르러 의친의 범위에 선왕의 유복친과 이성 유복친이 포함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들에 따르면 왕친(王親)은 동성 10촌 이성 6촌 이상. 선후(先后)는 동성 8촌 이성 4촌 이상, 왕비는 동성 8촌 이성 4촌 이상, 세자빈은 동성 6촌 이성 3촌으로 규정되었다.
의공(議功)의 범위는 『대명률』에서 친공신(親功臣)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들의 조부모, 부모, 처, 자손들에게도 공신 본인과 같은 형사상의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전률통보』에서는 친공신뿐만 아니라 원종공신(原從功臣)과 종묘에 배향(配享)된 공신까지 의공의 특권을 부여받았다.
다음 의귀(議貴)의 범위에 대하여 『대명률직해』에서는 "관작이 1품인 사람 및 문‧무 직사관 3품 이상인 자와 낭계(郎階) 2품 이상인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곧 당상관과 2품 이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조선의 핵심적인 관원들이었다. 조선초기에 2품 이상 관원의 범죄에 대해서는 관찰사나 사법 기관에서 직접 형량을 결정하지 못하고, 조정 중신들의 평의(評議)를 거쳐 왕에게 보고하여 윤허를 받아 형량을 결정하였다. 3품 당상관의 범죄에 대해서도 사법 기관에서 직접 처리하는 것을 제한하였다. 조선의 2품 이상 관원이 곧 ‘의귀(議貴)’의 대상이고, 당상관도 사안에 따라 의귀의 대상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의친, 의공, 의귀의 범위는 객관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어서 조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의고, 의현, 의능, 의근 등은 이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가 곤란했고,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결정될 소지가 컸으므로 조선에서도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지 못하였다.
의의
팔의는 왕실을 비롯한 핵심 지배층의 범죄 행위에 대해 형사상 특혜를 부여하는 것으로 사법 기관의 독단을 허용하지 않고, 중신들의 평의와 왕의 결정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지배층을 옹호하기 위한 사법 장치였다. 그러나 팔의라 하더라도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거나 강상을 어지럽히게 되는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이러한 특권이 제약을 받았다. 결국 팔의의 특권은 조선시대 형사상 신분 차별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부례(大明律附例)』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 『대명률집해부례(大明律集解附例)』
- 『대명률집설부례(大明律集說附例)』
- 『고사신서(攷事新書)』
- 『전률통보(典律通補)』
- 『육전조례(六典條例)』
- 구덕회, 「대명률과 조선 중기 형률상의 신분 차별」, 『역사와 현실』65, 2007.
- 申明鎬, 「朝鮮朝 王室整備와 議親」, 『淸溪史學』13, 1997.
- 申明鎬, 「朝鮮初期 八議와 刑事上의 特權」, 『淸溪史學』12, 199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