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로(板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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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에서 파종한 뒤에 종자에 흙을 덮어주는 복종 작업에 활용한 농기구.

개설

판로(板撈)는 논밭에서 종자를 파종한 다음 흙을 덮어주는 복종(覆種)작업을 수행할 때 이용한 농기구이다. 『농사직설』에 향명이 번지(翻地) 또는 파로(把撈)로 소개되어 있는 것과 같이 우리 농기구 명칭으로는 번지이다. 번지는 흙덩이를 부수어 고르게 하는 데에도 사용하였고, 크기가 작은 번지는 가을에 타작할 때 곡식을 긁어모으는 용도로도 쓰였다. 종자를 번지로 복종해주면, 씨 위에 덮이는 흙이 두터워져서 싹이 트는 데 필요한 습기를 보존시켜 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연원 및 변천

중국 북위(北魏) 가사협(賈思勰)이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로(勞)’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농기구가 나오는데, 이 농기구로 수행하는 농작업도 ‘로’라고 지칭하였다. 중국왕정(王禎)의 『농서(農書)』에 따르면 기경(起耕) 작업을 한 다음 파로(耙勞)작업이 이어지는데, 파(耙)는 기경작업 뒤에 논밭 토양을 거소(渠疏)시키는 것이고, 로(勞, 撈)는 논밭 표면을 개마(蓋磨)시키는 것이었다. 파로를 각각 거소, 개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파로에 대해서 왕정은 이빨이 있는 파, 이빨이 없는 파로 특정하기도 하였다. 이를 우리 농기구 이름으로 정리하면 파는 써레이고, 로는 번지이다.

조선에서의 농작업도 기경 이후의 파로 작업이 연이어 이어지는 것이었다. 파의 경우 써레로 수행하고, 로의 경우 번지로 수행하는 것이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써레는 쟁기질을 거친 논밭토양을 고르게 만들어주는 농기구이고, 번지는 논밭 표면을 부드럽고 평탄하게 만드는 농기구이다.

『농사직설』에 보이는 농작업에 활용하는 판로는 논과 밭의 흙을 고르게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축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판로 이외에 파로(把撈)라는 이름의 농기구도 활용되고 있었다. 파로의 향명(鄕名)은 추개(推介)로 소개되어 있는데 곧 밀개였다. 밀개는 현재의 고무래로 인력을 이용하여 흙을 밀어 고르게 만드는 도구였다.

판로는 세조대 실록기록에 나오는데, 세조가 경기관찰사김연지(金連枝)에게 경상도 지역의 농작업이 정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에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경상도에서는 기경한 다음 목작(木斫) 즉 써레로 종횡으로 다스리고, 판로 즉 번지를 써서 평탄하게 한다. 그런 다음 파종한 뒤에 파로 즉 번지로 복종(覆種)한다고 한다. 이렇게 기경과 파로 작업을 충실히 수행한 다음 5, 6회 제초하면 상농(上農)이고, 추경과 춘경을 행하고 파종할 때 다시 한 번 기경한 다음 3, 4회 제초하는 자가 차농(次農)이며,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타농(惰農)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판로 즉 번지는 써레, 밀개와 함께 기경한 뒤에 이어지는 파로(耙勞) 작업에서 활용하는 농기구였다.

형태

판로 즉 번지의 형태는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좁고 긴 네모난 널빤지 모양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경우에 따라 좁고 긴 네모꼴의 널빤지에 써렛발(써레이빨)에 맞도록 작은 구멍 두 개를 뚫은 것이 있다. 또한 작은 나뭇조각 두 개를 덧대어 턱을 만들고 써렛발을 대어 써레 손잡이에 잡아맨 것도 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참고문헌

  • 『농사직설(農事直說)』
  • 가사협(賈思勰), 『제민요술』
  • 왕정(王禎), 『농서(農書)』
  • 서광계(徐光啓), 『농정전서(農政全書)』
  • 김용섭, 『조선후기 농학사 연구』, 일조각, 1988.
  • 염정섭, 『조선시대 농법 발달 연구』, 태학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