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혜(套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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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鞋) 위에 방한(防寒), 방습(防濕)을 목적으로 신은 덧신.

내용

혜(鞋)는 신목이 없고 운두(雲頭)만 있는 신이다. 우리나라에서 피혜(皮鞋)를 신는 것이 일반화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투혜(套鞋) 역시 사신들에게 하사하는 물건 중의 하나였다. 1406년(태종 6)의 기록을 보면 투혜는 전정(殿庭)의 조회(朝會) 때나 행행(行幸)의 영송(迎送) 때에만 착용하고 늙고 병든 자는 궐문(闕門) 밖에서 조회를 기다릴 때나 행행시의 노차(路次)에서 시위(侍衛)할 때, 그리고 각 아문(衙門)에 좌기(坐起)할 때 자원하는 자만 신게 하였다(『태종실록』 6년 11월 23일).

또한 1452년(단종 즉위) 8월 태평관(太平館)에서 사신 일행에게 하사한 물품 중 추위를 막는 도구에 투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투혜는 방한용의 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단종실록』 즉위 8월 26일 2번째기사]. 1429년(세종 11) 2월에는 상인(常人)들이 투혜를 신는 것에 대한 금령이 있었으며[세종실록 43권, 세종 11년 2월 5일 신사 7번째기사], 예종과 성종대에도 궐내에서 투혜 및 우산을 쓰는 것에 대한 금하는 상소를 올린 것으로 보아 투혜를 만들기 위한 재료 공급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예종실록』 1년 8월 14일)(『성종실록』 1년 1월 5일). 『조선왕조실록』 중의 흑사피투혜(黑斜皮套鞋)·전정투혜(氈精套鞋)·마피투혜구(馬皮套鞋具) 등의 기록으로 그 재료를 알 수 있다.

용례

抽斂毛物 或作套鞋毛褥毛衣毛冠(『태종실록』 6년 11월 23일).

참고문헌

  • 『조선상식(朝鮮常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