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위영(統衛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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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고종 25) 친군오영(親軍五營)의 후영(後營)과 우영(右營), 해방영(海防營)을 통합한 군영.

내용

1888년(고종 25) 각 영에 분산되어 있던 군병의 소요경비와 제도상 모순을 개편하기 위해 우영(右營)과 후영(後營), 해방영(海防營)을 합쳐 통위영(統衛營)으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전영(前營)과 좌영(左營)을 합쳐 장위영(壯衛營), 별영(別營)은 총어영(總禦營)으로 하여 6개 영(營)을 3영 체제로 전환하는 군제로 개편하였다. 3영 체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통위영, 장위영, 총어영의 3영 체제 이전에는 매 영마다 500명의 규모였다. 1개 영에 500명을 기준으로 한 군제는 청국의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근대적인 국방체제를 도입하려는 고종의 의지에는 부적합하였다. 3영 체제에서 통위영은 중영(中營)으로 깃발 색깔은 황색이었으며, 장위영은 좌영으로 깃발은 청색, 총어영은 우영으로 깃발은 백색이었다. 이들 군영의 수기(手旗)와 초요기(招搖旗)는 각각 그 영의 색깔에 따라 만들었다. 통위영의 초대 통위사(統衛使)는 민영익(閔泳翊)이었으며, 장위영의 장위사(壯衛使)는 한규설(韓圭卨), 총어영의 총어사(總禦使)는 이종건(李鍾健)이 임명되었다(『고종실록』 25년 4월 19일). 통위영을 비롯한 3영은 고종의 행행을 호위하는 시위군으로 동원되었다. 고종이 궁궐 내외를 동가(動駕)하거나 동여(動輿)할 때에 통위영과 장위영의 병정을 선발하여 거행하였다(『고종실록』 23년 9월 17일).

용례

敎曰軍制者 因時措置 隨便增革 求適於用而已 其爲關係之重 急先之務 莫此爲大 現今軍額未夥 而營號彌多 規制不一 而接濟愈繁 旣未得精鍊 又無以厚養 宜思所以變通之道 只置三營 合右營後營海防營 稱之以統衛營 合前營左營 稱之以壯衛營 別營稱之以總禦營 凡所節制與規式 各營將臣 就議總理大臣 成節目以入 又敎曰右營使後營使海防使閔泳翊 統衛使下批 前營使左營使韓圭卨 壯衛使下批 別營使李鍾健 總禦使下批(『고종실록』 25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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