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죄(笞罪)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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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태죄 |
한글표제 | 태죄 |
한자표제 | 笞罪 |
동의어 | 태형(笞刑) |
관련어 | 오형(五刑) |
분야 | 정치/사법/행형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조지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태죄(笞罪)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4년 11월 2일 |
작은 매로 볼기를 치는 가벼운 죄.
내용
태형(笞刑)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형률(刑律)에 명백하게 실리게 된 것은 당률(唐律)을 모방했던 고려 왕조에 이르러서이다.
당나라의 형법전 『당률소의(唐律疏義)』에는 ‘태(笞)’란 매를 친다는 뜻인데 또한 부끄럽게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며, 사람에게 작은 허물이 있으면 법에 의해 벌주어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매를 쳐서 그 허물을 부끄럽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범죄인에 대한 형벌은 『대명률』의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의 5형(刑)을 기본 체제로 하고 있었다. 이는 범죄의 경중(輕重)에 따라서 형벌의 위계를 정해놓은 것인데, 5형 가운데 가장 가벼운 범죄에 적용되던 형벌이 바로 태형이다. 태형은 다시 10, 20, 30, 40, 50의 5등급으로 나뉘어졌다.
『대명률』에는 태형에 사용되는 형구(形具)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즉 소형장(小荊杖)이라고 하는 작은 매를 사용하며, 그 크기는 큰 지름이 2분 7리, 작은 지름 1분 7리이고 길이는 3척 5촌이다. 소형장을 만드는 재료로는 작은 나뭇가지[小荊條]를 사용한다고 하며, 그 마디와 옹이는 깎아내도록 하고 있었다. 또한 소형장을 만들 때에는 관에서 내려 준 교판(較板)을 써서 법식대로 맞추게 되어 있고, 힘줄이나 아교 따위의 여러 물건을 붙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태죄를 집행할 때는 소형장의 가는 쪽으로 볼기를 치도록 하였다.
태죄는 그 판결 및 집행에서도 다른 형벌처럼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가령, 『경국대전』 「형전(刑典)」에는 결옥일한(決獄日限)이라고 하여 판결 기한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사형은 30일·도형 및 유형은 20일·태형은 10일로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추단(推斷)조에는 태형 이하의 사건의 처결은 하급 관청에서 직접 할 수 있게 했다.
태형이 적용되는 범죄에는 절도 미수범·경미한 폭행·관리(官吏)들이 업무상 범한 가벼운 범죄 등을 들 수 있다.
용례
傳旨刑曹曰 今當冱寒 慮有輕囚滯於囹圄 中外笞以下囚人速放 限來年二月笞罪勿囚 保管推鞫(『세조실록』 4년 11월 2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 김택민·임대희 역, 『역주 당률소의(唐律疏議)』, 한국법제연구원, 1994.
- 中橋政吉, 『朝鮮舊時の刑政』, 朝鮮總督府法務局內 治刑協會,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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