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맥(眞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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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떡잎식물 벼목 볏과의 한해살이풀인 밀의 다른 이름.

개설

밀의 다른 이름으로 보통 소맥(小麥)이라 부른다. 보리인 대맥(大麥)과 구분하기 위해서 참 진(眞)을 사용하여 ‘진맥(眞麥)’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자라는 밀은 겨울에 심어서 여름에 수확하는 겨울밀(winter wheat)이다. 밀은 쌀이 부족한 여름에 양식으로 효과적인 곡물이지만, 생산량이 적어서 보리나 메밀을 대체하지 못했다. 국수·만두·유밀과 등의 주재료로 쓰였고, 누룩을 만드는 데도 쓰였다.

원산지 및 유통

밀의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파종하는 시기에 따라 보통 봄밀과 겨울밀로 나눈다. 밀은 연간 평균 기온이 3.8℃, 여름철 평균 기온이 14℃ 이상인 지대에서 경제적인 재배가 가능하다. 이것을 보통 봄밀(spring wheat)이라고 부른다. 이 봄밀이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밀이다.

한반도에서는 겨울에 심어서 여름에 수확하는 겨울밀이 주종을 이룬다. 태종 때 처음으로 맥전조세법(麥田租稅法)을 정하면서 “가을에 심은 대맥과 소맥을 이듬해 초여름에 이르러 수확한다.”고 하였다(『태종실록』 15년 10월 16일). 곧 밀을 늦가을에 파종하여 초여름에 수확했다는 말로 겨울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때 황해도에서 수납한 밀을 조운하지 말고 각 고을에서 잘 보관하였다가 다음 해 종자로 사용하자는 의정부(議政府)의 보고가 있었다(『세종실록』 28년 6월 4일).

1931년 발간된 『조선총독부 농업시험장 25주년 기념지』에 의하면, 식민지 시기 조선의 재래종 밀은 황해도·평안남도·강원도에서 주로 많이 생산되었다. 특히 황해도가 생산량이 가장 많았다. 재래종 밀 중에서 품종이 가장 좋은 것 역시 황해도에서 재배된 것이었다.

밀은 주로 조운(漕運)에 의해 서울로 옮겨졌다. 태종 때 충청도·강원도·황해도에서 바치는 밀을 8월에 조운하도록 규칙으로 삼았다(『태종실록』 16년 7월 16일). 이 역시 6월에 수확한 겨울밀을 말한다.

연원 및 용도

정약용(丁若鏞)은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소맥은 진맥이다.”라 하여 그 가루가 진말(眞末)이라고 했다. 홍만선(洪萬選)이 편찬한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진맥은 까끄라기가 길고, 익으면 열매가 푸르다. 기름지거나 척박한 땅에 모두 좋고, 심는 시기는 위와 같다.”고 했다. 또 『금양잡록(衿陽雜錄)』을 인용하여 2월에 땅이 녹으면 심고 5월에 익는 ‘막지밀[莫知麥]’이 있으며 한글로 ‘막디밀’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왕실에서는 밀을 진휼 곡식으로 사용했다. 태종 때 황해도에 기근이 들자 진휼을 하면서 그 전에 거둬들인 밀로 구제한 일이 있었다(『태종실록』 6년 1월 10일). 헌종 때는 동교(東郊)와 북교(北郊)에 진소(賑所)를 두고 밀을 제공하였다(『헌종개수실록』 13년 12월 30일).

기근에 대비하여 밀을 심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경기도에 수재가 들어서 벼농사가 어렵게 되자 보리와 밀의 종자를 주어 8월에 파종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성종실록』 3년 7월 29일), 잘 재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밀이 귀했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상사(喪事)를 당한 친인척이나 신하에게 여러 가지 물품과 함께 밀을 제공해 주었다(『성종실록』 19년 12월 22일).

밀의 싹은 술 만드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누룩의 재료였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참고하여 밀누룩 만드는 법은 다음과 적었다. “껍질째 물에 깨끗이 씻어서 볕에 바싹 말린 후에 6월 6일에 맷돌에 갈아서 밀 뜬 물에 반죽하여 덩어리를 만들어 닥나무 잎사귀로 꼭 싸서 바람 통하는 곳에 달아 두어 칠십 일이면 쓰느니라.”

영조 때 심이지(沈履之)가 전라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도내에 있는 일만 석에 가까운 밀을 거짓으로 진휼청(賑恤廳)에 보고하여 값을 줄여 얻어 놓았다가 금주령(禁酒令)이 조금 느슨해진 틈을 타서 값을 올려 받은 일이 있었다(『영조실록』 44년 3월 18일).

생활민속 관련사항

홍석모(洪錫謨)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6월 15일 유두(流頭)가 되면 밀가루로 상화병이나 연병, 그리고 유두누룩을 만든다고 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콩이나 깨와 꿀을 버무려 그 속에 넣어 찐 것을 상화병(霜花餠)이라고 한다. 밀을 갈아서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다음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줄[苽]로 만든 소를 넣는다. 혹은 콩과 깨에 꿀을 섞은 소를 넣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므려 만든 것을 연병(連餠)이라고 부른다. 나뭇잎 모양으로 주름을 잡아 줄로 만든 소를 넣고 대나무로 만든 채롱에 쪄서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이것들이 모두 유두날의 세시음식으로 제사에 올리기도 한다.”고 했다. 유두쯤에 수확한 밀이 세시음식이 되었다.

참고문헌

  • 『경세유표(經世遺表)』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산림경제(山林經濟)』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朝鮮總督府 農事試驗場, 『朝鮮總督府 農事試驗場 25週年 記念誌』, 1931.
  • 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휴머니스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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