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紙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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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공중에 띄우며 노는 놀이.

개설

바람의 방향대로 날리기 때문에 풍쟁(風錚) 혹은 연날리기라 불리기도 한다. 지연(紙鳶)은 종이연이 하늘을 날 때 나는 소리가 솔개와 유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날리기는 정월 보름에 하는 놀이로 알려졌으나, 그보다는 초겨울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정월 보름까지 성황을 이루다가 정월 대보름 이후에는 더 이상 날리지 않았다. 연날리기는 재액을 막는 의미와 가정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종이연[紙鳶]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647년(신라 선덕여왕 16) 일부 대신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져 군의 사기가 떨어지자 김유신(金庾信)이 거대한 연에 불을 붙인 허수아비를 달아 띄운 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여왕이 승리할 것이라 하자, 군의 사기가 올라 반란군을 진압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종이연이 추락하는 것을 상서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1566년(명종 21)에 궁중에서 연을 날려 추락한 일이 있었는데, 중궁이 외출 후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일이 있어 오부 관령(管領)을 추고하여 치죄한 일이 있었다(『명종실록』 21년 1월 15일). 그 이유는 연이 추락된 집에는 그해에 재앙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연에 액운을 필사하여 띄워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의하면 중국의 연날리기는 늦봄에 하는 놀이인 것에 비해 우리는 겨울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만 날린다고 하였다. 방액(防厄)을 기원하는 연을 가지고 놀다가 얼레와 연결된 줄을 끊어 띄워 보내는 것을 끝으로 한 해의 모든 액운이 소멸되었을 거라는 믿음으로 인해 이후에는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놀이도구 및 장소

연은 대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가늘게 자른 것을 뼈대로 하여 그곳에 종이를 풀칠한 것으로 키의 모양과 같다. 그리고 그 종이에 오색 칠을 한다. 완성된 연에는 액막이[防厄]를 기원하는 문구를 필사하기도 하였다. 『무명자집(無名子集)』에 의하면 ‘액(厄)’·‘송액(送厄)’·‘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쓴다고 한다. 연줄은 실을 겹쳐 아교로 문질러 흰 말꼬리처럼 만들거나, 혹은 치자 물을 노랗게 들이기도 한다. 이 연줄은 얼레[絲車]에 감아 연과 연결시킨다. 연의 종류는 그 형태에 따라 방패연[方革]·바둑판연[基斑]·생선비늘연[魚鱗]·쟁반연[錚盤]·까치날개연[鵲翎]·용꼬리연[龍尾] 등이 있다.

연은 주변에 장애물이 없고 바람이 잘 부는 들판에서 주로 날렸는데, 『경도잡지』에 의하면 서울에서는 수표교(水標橋) 연변 상하를 따라 연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쌓듯이 모여 선다고 하였다. 그만큼 연날리기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놀이 방법

지연의 놀이 방법은 가족의 재액이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글자를 연에 써서 띄우다가 연줄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연의 뒷면에 가구 구성원의 이름과 출생년과 함께 액을 없애 주기를 바라는 글자를 필사하였으며, 연을 날릴 때 실이 감겨 있는 얼레에 연결하여 공중에 띄워 바람의 방향대로 날렸다. 그 다음에는 연끼리 부딪혀 잘라먹거나 해질 무렵에 연의 줄을 끊어버렸다.

『경도잡지』에 의하면, 우리의 연싸움은 단순히 날리는 것에만 국한하지 않고 종횡(縱橫)으로 휩쓸어 버리거나 남의 연줄을 많이 끊음으로써 즐거움을 삼았다. 연줄을 잘 교차시키는 능력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 같은 연끼리의 싸움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놀이문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홍대용(洪大容)의 연행록 『담헌연기(湛軒燕記)』에 의하면, 청에서는 종이연을 허얼[鶴兒]이라고 불렀는데 두꺼운 종이로 봉이나 학 등의 모양으로 만든 연을 멀리 나는 것에만 힘쓸 뿐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연끼리 부딪혀 잘라먹는 놀이는 없었다고 하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연날리기는 아이들의 놀이이기는 하지만, 연에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이름과 기원 문구를 적어 날려 보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면 멀리 날아간 연이 액운을 모두 가져간다고 믿었다. 액(厄)이라는 글자가 써진 연을 띄워 보내는 것을 ‘액연 띄우기’라고 한다. 한편, 재액이 적힌 문구가 떨어진 집은 한 해의 운이 불길하다고 여기는 속설이 있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목은집(牧隱集)』
  • 『무명자집(無名子集)』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이재선, 『우리나라 민속놀이』, 한국문화사, 1997.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