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전도(地球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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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축적에 근거해서 동서반구를 그린 서양식 지도.

개설

유럽인에 의해 대서양 항로가 개발되면서 지도를 통한 세계 인식이 시작되었다. 메르카토르식의 세계 지도를 통해 전 세계에 있는 나라들을 알게 되었고, 새롭게 개척 내지는 침략할 상대를 탐색하는 도구로 지도를 사용하였다. 동양에는 마테오 리치와 알레니 등의 선교사를 통해 청나라에 전파되었고, 곧 조선에도 들어왔다.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와 알레니의 만국전도(萬國全圖)는 동양인의 지리적 사고를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지구전도(地球全圖)는 그런 지도의 한 종류이다. 원지도의 명칭이 지구전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 세계가 묘사된 지도로 생각된다. 조선에는 두 차례에 걸쳐 지구전도가 도입되었는데 정조대에 의주를 통해 들어왔고, 고종대에 신문을 창간하면서 지구전도를 게재하였다.

1793년(정조 17) 10월에 의주부윤이의직(李義直)이 지구전도에 관해 보고하였다. 그가 보고한 것은 영국이 청나라에 보낸 천체와 지리에 관한 기계와 지도였다. 그 중 포랍니대리옹(布爉尼大利翁)은 하늘의 해·달·별과 지구의 전도(全圖)에 관한 것으로 해·달·별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일식과 월식 및 별의 도수가 어긋나게 되면 모두 틀 위에 나타나고, 그 일이 발생할 연월일시를 아울러 가리켜 주는 천체 기구였다. 또한 시간을 알리는 종이 있었는데 천문지리표(天文地理表)라고 했다. 천구전도(天球全圖)는 하늘을 쪽빛으로 만들고 금과 은으로 별을 만들었으며 안에 은사(銀絲)로 하늘 각 곳의 도수를 구별하였다. 지구전도는 천하만국과 4개 주(州)의 산·하천·바다·섬들을 둥근 지구 표면에 그리고 바다의 뱃길과 서양의 배를 그려 넣은 것이다(『정조실록』 17년 10월 26일). 정조대에 보고된 지구전도는 이후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가 고종대에 다시 등장하였다.

1883년(고종 20) 10월 『한성순보(漢城旬報)』가 창간되었다. 창간호에는 정부 소식의 내국기사[內國記事], 외국 소식의 각국근사(各國近事), 교양을 위해 특별 해설을 한 지구전도와 지구도해(地球圖解)·논지구(論地球) 등 지구 지리가 실려 있었다. 『한성순보』의 순보서(旬報序)에는 오늘날 과학이 성하여 교통이 발달함에 이상한 모습을 한 외국인들과 접촉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사물의 변화와 문물제도의 발전에 대해서 시무에 관심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문물을 파악하기 위한 방도로 지리지를 첨부했던 것이다.

1889년(고종 26)에는 고종이 미국주재전권대신(美國駐在全權大臣)으로 있다가 돌아온 박정양(朴定陽)을 만나 대화할 때, 박정양이 미국의 크기와 거리를 지구전도를 통해 인식했다고 하였다(『고종실록』 26년 7월 24일). 『한성순보』를 통해 확산된 지리서를 정부 관료들도 숙지하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내용 및 특징

지구전도는 지구의를 반으로 나눈 원형의 구의(球儀)를 좌우로 나누어 동반구와 서반구를 설명하였다. 평면식 지도가 극지점으로 갈수록 부정확한 것에 비해 구의 형태는 사실적 묘사에 근접한 축적을 보여 주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고종시대사(高宗時代史)』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 임경석·김영수·이항준, 『한국근대외교사전』, 성균관대학교, 2012.
  • 김연희, 「『漢城旬報』 및 『漢城周報』의 과학기술 기사로 본 고종시대 서구 문물 수용 노력」, 『한국과학사학회지』33권 1호, 2011.
  • 배우성, 「서구식 세계지도의 조선적 해석 <천하도>」, 『한국과학사학회지』22권 1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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